변하지 않는 예술 ‘석채화’ 그 가치 영원하다
[매거진 포스트21=김민진 기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완전히 멈춰버린 듯하다. 사람들 사이의 정은 메말라가고 감수성은 사라졌다.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일은 줄어들었고, 집 안에만 있는 사람들은 의심과 비난 등 부정적인 감정의 목소리만 높일 뿐, 감동과 기쁨의 목소리는 줄어들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토록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자연 속에서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김기철 석채화 화백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내놓아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줄기 위로를 건네고 있다.
위기일수록 빛나는 자연의 아름다움
코로나19는 이 시대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에게 전례없는 위기를 안겨주었다. 직격탄을 맞은 건 유통과 제조업 등이지만 사람의 모임 자체를 지양하는 문화가 형성된 탓에 각종 축제와 행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예술가들 역시 마찬가지. 작품활동 자체는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영향이 크지 않지만 작품을 전시하는 과정은 관객과의 만남이 필수이기 때문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석채화의 거장으로 정평을 받는 김기철 화백은 이같은 현실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완성은 관객과의 만남입니다. 물론 홀로 즐기는 예술에도 의미는 있지만 진정한 예술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이를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공감하는 데 있죠.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국의 작품, 전시회가 취소되면서 많은 예술가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전 국민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런 때에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도 있는 법. 중국의 공장가동이 중지되면서 대한민국의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자연의 위대함은 위기일수록 더욱 빛나고 있다.
“전 국민이 침울하게 방 안에만 앉아있는 요즘, 작품활동을 위해 여러 꽃을 바라보면 색다른 마음이 듭니다. 인간은 이렇게 어렵고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는데, 자연은 언제나 변함이 없구나. 자연은 있는 그대로 완벽한 것이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예술은 또 예술 나름대로 피어난다는 명제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예술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고 했던가. 인간의 사정과 관계없이 피어나는 예술은 김기철 화백의 손 끝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유서 깊은 석채화, 영원을 상징하는 예술로 각광
석채화는 일반 사람들에게 사뭇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유서 깊고 전통 있는 예술활동이다. 400년 전 인도에서 처음 시작해 우리나라에 전래된 석채화는 신기하게도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돌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돌을 곱게 갈아서 만든 돌가루가 그림의 원류인 셈. 우리가 초등학생 때 물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처럼, 김기철 화백은 돌가루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돌가루로 그린다고 하면 투박한 그림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그림은 정밀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동물을 그리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꽃을 그리면 향기가 나는 듯 하다.
“세상을 뒤집어 엎은 어마어마한 명작 그림이라도 언젠가는 색이 바래고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이라는 예술의 한계가 거기에 있죠. 하지만 석채화는 다릅니다. 돌가루로 그린 그림은 쉽게 훼손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죠. 그야말로 영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기철 화백의 말대로 석채화는 예부터 영원성을 상징하는 예술이었다. 돌 자체가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돌가루로 그린 그림 역시 변치 않는 것. 그래서 석채화는 보석화, 만년화라고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김기철 화백 역시 석채화의 이러한 영원성에 매료되어 석채화에 매진, 벌써 40여 년 동안 석채화를 그리고 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원료가 되는 돌가루를 얻는 것이 거의 노동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어려운 만큼 기쁨과 환희도 두 배
김기철 화백은 전라북도 무주군에 자리 잡고 있다. 화백이 거주하는 무주군 반딧골 전통공예문화촌에서는 화가들의 고즈넉한 붓질과 예술가들의 열정의 땀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석채화는 돌을 어떤 처리도 없이 그대로 갈아서 이를 원료로 그리는 그림이다. 돌의 색에 따라 원료의 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조금 더 독특한 돌, 다양한 색깔의 돌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석채화가들은 이 돌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김기철 화백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간만 나면 좋은 돌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그의 걸음은 거주지인 무주는 물론이고, 인근의 영동, 금산까지 닿아있다. 돌을 구하는 것은 석채화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특히 김기철 화백은 전통적인 방식인 아교가 아니라 천연 접착제로 밑그림을 그린다. 접착제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색의 돌가루를 뿌려 완성하는 것.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석채화가는 드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리는 과정이 고되고 어려운 만큼, 그림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과 환희 역시 곱절이라고 김기철 화백은 이야기한다.
“석채화는 어렵습니다. 원하는 색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물감과 달라서 원하는 색 하나를 위해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돌을 찾아야 하죠. 거기다 어렵게 구한 돌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일반적인 회화와 달라서 여러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해요. 그림이라기보다는 공예에 가까운 예술이죠.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완성된 그림은 100년, 2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나의 노력이 빚어낸 예술이 후대까지 그 모습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 예술가로서 이만한 기쁨은 또 없죠.”
이토록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석채화지만 정작 김기철 화백이 그리는 것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주제를 삼는다. 이를 통해 작가의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꽃, 오리, 호랑이 얼굴, 천사 등 자연에서 얻은 원료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만큼,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을 그려야 한다는 그만의 철학 덕분이다.
“우리가 매일 보는 꽃, 거리, 동물들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특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돌멩이도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처럼요. 자연 속에서는 어떤 것도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만의 아름다움이 녹아 있고, 숨겨져 있어요. 우리 인간이 문명의 이기와 혜택에 빠져 이것들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죠.”
일상에서 석채화의 아름다움을 찾는 김기철 화백이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넓은 마음. 이것이 김기철 화백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석채화 화백으로 만들어 준 것 아닐까?
어려운 시기, 일상의 예술로 이겨내길
김기철 화백은 미술계에서 명실공히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40여 년 내내 국내외 크고 작은 전시회를 통해 관람객을 만나온 김기철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상, 문화예술대상, 브랜드 대상, 미래혁신 CEO문화예술 대상, 글로벌 문화관광 브랜드 대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작년 4월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에서 열린 ‘2019 SCAF(Seoul Collector Art Festival)’에도 참가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국외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 빈센트 아트 갤러리, 하와이 컨벤션 센터, 필리핀 한비 수교 55주년 기념 전시회, 태국 파타야 호텔, 필리핀 국립 미술관, 인도 간다리아 아트리움 갤러리 등 각종 초대전에 참여해 한국의 자연과 예술, 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선 인물이 바로 김기철 화백이다. 후학양성에도 적극적이다.
심천 송승연 작가를 비롯해 김경미 작가 등을 수제자로 받아들여 석채화의 또 다른 예술성을 키워내고 있는 것.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김기철 화백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사람들이 절망하며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안쓰럽다는 것. 이런 안타까움과 함께 이런 때야말로 예술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제가 생각하는 참된 예술이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주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주저앉고 있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주변을 한번 돌아봐 주세요. 우리가 평소 바쁜 일상에서 스쳐 지나간 자연들, 이웃 아기의 해맑은 웃음소리, 베란다에 흐드러진 꽃, 생각보다 미소지을 일은 많습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이러한 일상의 예술을 통해 어려움을 잘 견디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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