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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한국에서 재벌, 대기업은 자주 사회적 이슈가 된다. 기업의 힘이 워낙 강력한 데다가 냉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효율과 성장만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는 특성 때문에 한국에서 기업은 언제나 사회적인 책임이 따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담을 생산해내며 ‘갓’이라는 칭호를 얻은 기업이 있다. 바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갓뚜기로 불리는 오뚜기다. 

오뚜기의 역사

오뚜기의 역사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흥화학공업의 사장 함영준의 장남, 함태호가 식품부를 데리고 나와 따로 풍림상사를 세운 게 기원이라고 한다. 창업 초기, 국내 식품시장은 제일식품과 한국에스비식품이 양분하고 있었다. 

일본의 다양한 상품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오뚜기는 이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카레라이스와 케찹, 마요네즈 등을 출시하며 사업을 이어나갔다. 쓰러져도 계속 일어난다는 회사명처럼 항상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과 제품을 내놓으며 성장을 이어나갔다. 

1973년 풍림상사는 오뚜기 식품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식초와 카레, 미원 등 다양한 소스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1981년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3분 카레와 짜장을 출시했으며 1987년에는 오뚜기라면을 창립해 라면사업에도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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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상장 이후에는 해외로까지 제품을 출시하며 명실공히 국내 식품계의 강자로 등극했으며 라면 시장에서도 점유율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을 기록한 오뚜기는 갑작스러운 성장 없이 내실을 다지며 꾸준히 규모를 키워 오늘에 이르렀다. 

청렴한 기업, 갓뚜기

출시하는 제품들이 하나같이 오래된 제품들이 많은데, 소비자들은 오뚜기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갓뚜기다. 오뚜기의 창립자인 함태호 명예회장이 2016년 별세했을 때도 네티즌들이 그의 행적을 떠올리며 애도했을 정도. 

대체 오뚜기는 왜 갓뚜기라 불리게 된 것일까? 그 원동력에는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오뚜기만의 정신이 있다. 창업주 함태호 회장은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지 말라는 경영철학을 남겼을 정도로 정규직 채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오뚜기에는 비정규직이 1% 남짓인데, 그나마 있는 비정규직도 경력단절 여성을 파트타임 형태로 채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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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헌에도 끊임없이 공을 들이고 있다. 매년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 수술을 후원하고 있으며 석봉토스트가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토스트를 나눠준다고 하여 석봉토스트에 들어가는 소스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오뚜기가 자신들의 이러한 선행을 앞에서 드러내놓고 밝히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뒤에서 남모르게 선행을 베풀고 있어 이들의 진정성이 인정받는 것이다. 

재벌가의 귀감이 되는 갓뚜기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인가?

기업 오너 일가의 이미지 역시 갓뚜기의 설립에 큰 역할을 했다. 일단 상속 과정에서 큰 부정이 저질러진 것도 아니고, 거액의 상속세를 온전히 납부하여 재벌가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함영준 회장이 개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도우는 활동도 많이 하고 있으며 선친의 유언에 따라 개인적인 기부도 매월 하고 있다. 

라면값 역시 무려 12년간 동결하며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행보를 보이는 기업이다. 하지만 이러한 갓뚜기라는 찬양에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오뚜기가 대한민국 기업들 중에 청렴한 편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뚜기라고 완전히 청렴하거나 깨끗한 기업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부과되는 업무량이 많다고 하며 식품위생법 위반을 한 적도 있다. 일감 몰아주기식 편법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오뚜기가 우리나라 중견, 대기업 가운데에서는 유례없이 깨끗한 편이라며 갓뚜기라는 찬양을 이어가고 있다. 포스트21 뉴스 

[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국내에서 삼성 다음가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거의 겹치는 분야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는 기업이 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국내 재계서열 부동의 2위를 기록하고 있는 SK다. 

SK의 회장은 최태원 회장으로 창업주인 최종건의 조카이다. 과거에는 젊은 대기업 리더를 뜻하는 인물이었지만, 삼성과 LG의 후계자가 모두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는 평균적인 대기업 총수의 나이가 되었다. 

SK그룹이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는지, 그리고 SK를 이끌어가는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섬유산업에서 시작된 SK의 역사

SK그룹의 창업주인 최종건은 사업가인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성장했다. 기술을 배워야 성공한다는 아버지의 지론에 영향을 받아 경성공립직업학교의 기계과를 졸업한 그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선경직물공장에 견습기사로 입사한다. 

이 때가 8.15광복 직전. 광복 이후 20대의 젊은 나이의 최종건은 선경치안대를 조직, 혼란상황에서 회사를 지켜내며 일정 지분을 얻어낸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선경직물공장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최종건은 이후 1953년, 무너진 선경직물을 불하받으며 SK그룹의 시작을 알렸다. 

 

애초에 직물회사로 시작한 SK는 1966년 해외통상을 인수하며 섬유부문에 집중한다. 그리고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하며 에너지, 화학 분야에 진출, 급격한 성장을 이룬다.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도 인수하여 통신쪽까지 사세를 확장, 지금의 SK그룹이 되었다.

석유와 이동통신이라는 효자 산업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성장

역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SK는 적극적인 M&A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왔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M&A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SK를 있게 한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이다. 

다른 대기업과 다르게 석유와 이동통신이라는 필수 소비재에 빠르게 진출한 SK는 지금도 이 두 분야에서는 부동의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기 싫어 점유율 51%를 넘기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 석유는 국제유가의 영향을 일부 받는다고 쳐도 국내에서 주기적으로 소모가 되는 분야이고, 이동통신은 인터넷 강국으로 이름높은 한국에서 실패할 수가 없는 산업이다. 

이 두 분야에서 꾸준히,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이 보장되기에 SK는 안정적으로 그룹을 운영할 수 있다. 여기다 메모리 반도체 부분 매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는 SK하이닉스라는 양질의 회사도 보유하고 있기에 전문가들은 SK가 정말 망하기 힘든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젊은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현재 SK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총수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젊은 총수가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에서 최 회장은 젊음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었다. 

 

최태원 SK회장 / 사진제공 SK

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총수에 등극한 지 이미 2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재계에는 젊은 총수들이 대거 등장했고, 최 회장은 이들 사이에서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하며 SK를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 있을 때도, ‘국산 불화수소는 순도면에서 일본 제품보다 품질 면에서 떨어진다.’며 팩트를 통해 현실을 일깨운 바 있다. 

그렇다고 최 회장이 현실만을 쫓는 무정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그를 상징하는 단어가 열정일 정도로 매사에 열정을 강조하는 최 회장은 서번트 리더십을 지향한다. 

서번트 리더십이란 부하에게 목표를 공유하고, 부하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리더십 형태. 평소 기업 내에서 소탈한 모습을 많이 보여왔던 최태원 회장은 조직 구성원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이를 업무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 

세미나 방식도 미국의 유명한 강연회인 테드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으며, 직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대담 자리를 주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SK는 안정적인 자금원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전통의 기업이다. 하지만 최 회장의 총수 임명 이후, SK는 젊은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는 재계에서 맏형 역할을 하게 된 최 회장이 또 어떤 전략으로 젊은 SK를 운영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POST21 뉴스 

출처-현대차

세계적인 카셰어링 업체 우버(UBER)와 손잡고 개인용 비행체(PAV)개발 나서

자동차 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업체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

 

[포스트21 뉴스=유우주 기자] 20201월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은 국제가전박람회(CES)가 열린 라스베가스에서 개인용 비행체(PAV, 컨셉명 : S-A1)의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세계적인 카셰어링 업체 우버(UBER)와 합작해 도심 항공 네트워크구축의 청사진을 제공하며, 2028년에는 도심항공운송을 상용화 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대자동차의 제조 능력과 우버의 전 세계적 네트워크의 합작품이 될 도심항공운송의 핵심인 개인용 비행체란 무엇일까?

 

미래의 운송수단 개인용 비행체(PAV)

 

자동차 공급의 포화상태로 인한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으로 새로운 운송 수단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있다. 개인용 비행체는 가장 각광받는 차세대 운송수단이다.

 

수직 이륙과 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에 활주로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고,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사물 운송의 경우에는 시범적으로 드론을 사용한 운송 방식의 실험을 거듭하고 있지만, 사람 운송의 경우 더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활발한 시범 운행을 실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개인용 비행체 분야를 선도하려 하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신생 업체 오프너(OPENER.Inc)사의 개인용 비행체인 블랙플라이의 시연을 본 후 오프너 사에 1억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블랙블라이는 카본 소재의 튼튼하고 가벼운 몸체를 가지고 있고, 태양광 패널을 이용한 전지를 사용해서 25분만 급속 충전해도 배터리가 80% 충전된다.

 

또한 부력이 생기는 동체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수륙 양용이 가능한 모델이다. 현재 10,000마일 무사고 주행을 이어가고 있는 블랙플라이는 개인용 비행체 시장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포화된 자동차 시장 벗어나 프런티어 모빌리티 기업으로 발돋움하려 하는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의 개인용 비행체 시장 진입 발표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2세대 자동차인 전기차와 수소차의 기술 개발 발표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상용화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개인용 비행체 개발에 대한 출정식이었기 때문이다.

 

운송 수단의 혁신 기술 개발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에서 시작되고, 투자를 받아 생산하는 구조로 진행되어왔다. 테슬라와 오프너의 경우 기술 개발을 이룬 후 시연을 통해 투자를 받아 계속된 모델 생산을 이루는 케이스다.

 

하지만 혁신의 성공작이라 평가받는 테슬라의 경우, 넘치는 수요에 비해 생산시설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투자만으로는 부족해서 창업주인 앨론 머스크 본인의 집까지 저당잡히면서까지 생산시설을 서서히 늘려가야 했다.

 

이에 반해 현대자동차는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량을 자랑하는 인프라를 자랑하며, 우버는 세계 제일의 카셰어링 업체로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했다.

 

기술 개발만 잘 이루어 진다면 차세대 운송수단 업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기업이다. 이렇게 개인용 비행체의 개발은 차세대 운송수단 업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프런티어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현대자동차의 의지를 보여준다.

 

멀고 먼 상용화의 길, 범국가적인 지원 필요

 

기술력과 인프라가 갖춰진다 하더라도 상용화까지는 아직 첩첩산중이다. 항로 문제, 안전 문제, 운전 자격 문제, 주차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대부분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국가의 규제 완화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문제들이다.

 

스타트업 기업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새로운 혁신 기술이 국가의 근간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면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하나의 유니콘 기업의 사회적 기여가 국가경제에 많은 부분 이바지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세계로 수출할 전기자동차에 품질 좋은 배터리를 설치하기 위해 라이벌인 삼성, LG, SK와 공조할 준비를 마쳤다. 이 공조가 개인용 비행체에도 적용되어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대폭적인 규제 완화로 서포트 해줘야 할 것이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이카루스의 꿈. 사라져갈 꿈이 될지, 현대자동차의 현실이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POST 21 뉴스 

[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기업은 어디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성을 떠올릴 것이다. 

수 많은 그룹을 통해 거의 전 산업 영역에 진출해 있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삼성. 그들이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과 현재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은 무엇인지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작은 골목에서 시작된 삼성

삼성은 1938년. 초대회장 이병철의 삼성상회에서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혼란한 시기, 수 많은 분야로 사업 영역을 늘리며 규모를 키워나간 삼성은 여러 계열사를 설립했고, 1950년대 후반에는 인수합병을 통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성장을 거듭한 삼성은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히긴 했지만, 세계시장에서는 그 위세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 

삼성이 현재처럼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건 1993년. 2대 회장인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부터이다. 

이건희 회장은 양보다 질을 우선하자는 선언을 하며 경영혁신을 예고했고, 삼성은 제2의 창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삼성은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알 정도. 국내의 작은 골목에서 시작한 기업이 세계를 휩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삼성의 성장 비결, 인재 우선과 벤치마킹

삼성의 성공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인재다.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했을 당시, 삼성의 기술력은 세계에서도 많이 뒤쳐져 있었다. 그렇다고 그 때부터 당장 기술 혁신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 

이에 삼성은 국내나 해외를 막론하고 기술에 대한 지식을 갖춘 인재를 모셔오는 전략을 취했다. 거기다 미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이건희 장학재단에 투자하며 새로운 인재를 길러냈다. 

내부에서의 변화도 이어졌다. 당시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지역주의, 학연 등을 최대한 없애고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인사고과에 대학과 지역 등의 요소를 배제하고 실적만을 평가했다. 국적도 상관하지 않았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인종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배움을 청했고, 그들을 극진하게 대우하며 말 그대로 모셔왔다. 

이런 풍토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삼성은 언제나 최고의 인재로만 구성된 기업으로 유명하다.인재와 함께 삼성의 성장비결이 된 것은 벤치마킹이다. 

삼성은 일본의 다양한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 기업들의 경영 전략이나 제품을 벤치마킹하며 빠르게 그들의 수준을 따라잡았다. 

처음에는 모방은 원조를 따라갈 수 없다느니, 따라만 하는 사업은 결국 망한다느니 하는 비판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삼성은 벤치마킹으로 수준을 높이고, 거기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 아이디어를 입혀 오히려 선두 기업들을 제치고 글로벌 리더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의 존재 이유
 
삼성의 리더는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제는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을 이끄는 52세의 젊은 총수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이재용 부회장(사진=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기업총수가 된 이후, 삼성은 주목할 만한 행보를 여럿 보이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으며 그는 언론에 자신의 모습을 꾸준히 비추고 있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선대 회장들처럼 미래전략실의 보좌를 받아 선두에 서서 기업을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각 주요 계열사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며 그룹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전문 경영인이 결정할 수 있는 일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고, 확인하는 업무만 하며 기업 M&A나 전체 전략의 틀을 짜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른바 유연한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것. 그와 함께 이재용 부회장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에 적극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대표적.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젊은 세대가 신뢰하는 기업 총수 1위에 올랐으며 덩달아 삼성에 대한 국민의 반감 역시 호감으로 전환시킨 바 있다.

삼성은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삼성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인지도를 쌓고 있는 기업 삼성. 

벤치마킹을 통해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삼성이 이제는 모든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삼성의 행보 하나에 전 세계가 휘청거리는 상황. 그 이면에는 이재용의 리더십과 인재 제일을 고수한 삼성만의 경영 전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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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지역 사회, 모두 지키는 든든한 지킴이

 

[포스트21=유우주 기자]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의 후유증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중금속이 함유된 미세먼지의 습격 그리고 지하수와 하천의 고갈까지 우려 되는 상황이다.

 

강과 하천의 수중 생태계의 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친환경 산업을 이끌면서,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이가 있다. 1996년부터 친환경 산업을 시작해온 호정산업의 여중훈 대표다.

 

흙과 자갈뿐인 언덕을 푸르른 녹지로 만드는 마법

 

호정산업은 친환경 식생매트, 보행매트 및 생분해블록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업체다. ‘식생매트는 하천이나 강가 근처의 흙과 자갈로 이루어진 경사진 언덕을 친환경 소재의 매트를 덮어 꽃과 잔디의 종자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한다.

 

흙과 자갈로만 이루어진 언덕은 수위가 높아지거나 비가 내리게 되면, 쉽게 무너져 내려서 환경오염과 지반침하의 원인이 된다.

 

이런 황무지 언덕에 씨앗 발아율이 90%가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식생매트를 덮고 씨를 뿌리면, 녹지가 되어 토사유실이나 지반침하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녹색지대가 형성되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친환경 생태계가 마련되는 것이다.

 

호정산업은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 끝에 발아율은 90%가 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소재로 식생매트를 만든 기술성을 인정받았다.

재난안전 제품 인증서 수여식 (우)여중훈 대표

그 결과 2015년 창조경영대상 수상과 2017년 조달우수물품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한 니들펀칭공법20여 가지의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울산 태화강, 한강 개발지구, 세종특별도시 금강행복지구 등 우리나라의 중요 하천들의 수중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해 왔다.

 

큰 물을 바라보는 혜안

 

‘21세기 환경선진국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호정산업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상하이 섬유전시 박람회, 애틀랜타 섬유·기계 박람회, 하노이 엑스포, 푸랑크푸르트 환경박람회 등의 다국적 행사에 참석하여 글로벌 친환경 기업으로 가는 길의 포석을 다졌다.

 

호정산업의 상품들은 중국, 인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 인기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강과 하천이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인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호평받고 있다. 그 결과 2016년에는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에서 메콩강 유역 개발을 위해 식생매트를 무려 8,300만 달러(한화 약 1,000) 규모로 도입하는 약정을 맺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해외에서도 제품을 인정받아 큰 규모의 거래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끊임없는 좋은 제품에 대한 열망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여중훈 대표의 베트남에서의 기업인으로 발휘한 선한 영향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에는 영주시 홍보대사로 임명되어, 영주시와 베트남의 상호무역과 관광 발전에 이바지했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하천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역에서 사회적 책임 다하다

 

여중훈 대표는 본인의 성공은 스스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듯, 그의 모든 것이 존재하는 지역사회를 굳건히 하기 위해 아낌없이 힘을 쏟는다. 2014년부터 꾸준히 영주시인재육성장학회를 통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몫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본인의 특출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당연히 가야 할 길을 가는 것 뿐이라고 겸허히 말하는 여중훈 대표. 단순히 금전적인 지원뿐만이 아니다. 여중훈 대표의 또 하나의 직책은 바로, 자신의 모교인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물야중학교의 동문회장이다.

물야중학교 여중훈 동창회장

출생률이 낮아지고, 이촌향도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시골의 학교들은 대부분 통·폐합 되는 것이 모자라 폐교 수순을 밟고 있다. 학교가 폐교 된다는 것은 지역 사회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것이고, 그 지역의 존폐 여부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나 도심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학교가 단순히 교육기관이 아닌, 문화기관과 보육기관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물야중학교의 동문회장인 여중훈 대표는 처음에는 동창회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의 대한 보답으로 지역에서 주관하는 많은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뜻밖에 물야중학교의 폐교 대상 선정 소식을 듣고, 발벗고 나서 학교를 살리는 일에 나서게 되었고 결국 폐교 선정은 유예되었다. 그 공로로 동문회장에 선정된 여중훈 대표는 동문회원들과 더불어 학교 측과 협의하여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쳤다.

 

학생들의 견학과 수학여행에 600만원 가량의 금액을 찬조하고, 입학·졸업 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물야면에 사는 학생들을 다른 도시로 진학하지 못하게 설득하고, 다른 지역의 아이들을 스카웃하는 정성까지 쏟은 결과, 10명에서 12명이던 전교생이 두배가 넘는 26명으로 늘어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런 결과는 본인의 힘이 아니라, 4,000명 가까이 되는 동문회원들 덕분이라고 공로를 넘긴다. 봄에는 등반대회, 가을에는 골프대회를 통해 친목을 다지고, 1년에 한번 가을에는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개최하여 지역사회의 단합을 이끌어 낸다.

 

환경을 지키는 일로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얻고, 그 성공을 지역사회와 나눔으로써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걷고 있는 여중훈 대표. 그가 만드는 식생매트가 자갈언덕에서 꽃과 녹지가 자라나도록 지켜주듯, 그의 손이 닿은 지역사회 또한 굳건하게 자라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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