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이예지 기자] 제가 대학생 시절, 독서실을 다닐 때 카운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독서실 총무 분께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데 연락하고 지낼 수 있냐고요.
독서실을 등록할 때 작성한 개인 정보를 보고 연락처를 알아서 메시지를 보내신 것이죠. 당시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하니 다들 웃으며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살짝 기분이 나빴습니다. 업무 중 고객의 개인 정보를 이용하여 사적인 용도로 쓰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불쾌함을 표출하지는 않고 딱히 응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그 반응을 대신했지만, 조금 의아한 마음이 남았습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인데 제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걸까요?
최근 사회적 분위기는 그건 민감한 게 아니라고, 업무 중 발생하는 연애 감정을 바탕으로 함부로 연락 좀 하지 말라고 말해주더군요. 업무 중 알게 된 개인 정보를 활용해 일방적으로 좋아한다는 호감을 드러냈다가 큰 파장을 불러온 최근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자살 상담 뒤 “편한 친구가 되고 싶다” 연락 한 상담원
지난달,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 김 모 씨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1393 상담 전화에 개인적인 우울감을 털어놓기 위해 연락했습니다. 한 남자 상담원이 응답했고, 김 모 씨는 30여 분 동안 고민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상담이 끝난 뒤, 그날 밤에 남자 상담원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오늘 새벽에 상담 나누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맴돌아서요. 마음이 힘드실 때 문자도 좋고 전화도 좋습니다. 편한 친구 하실래요?”
불쾌함을 느낀 김 모 씨는 상담원이 자신의 개인 정보를 빼내 개인적으로 연락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상담원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회신했고, 1393 측에도 항의를 넣었습니다. 센터 측 관계자는 “절대 일반적이지 않은 규정 위반 상황”이라고 답변함과 함께 상담원을 즉시 제명 처리했습니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이 기사가 소개되자 다수의 네티즌들이 황당함을 표했습니다. ‘저런 식이면 누가 마음의 고통을 털어놓을까? 정부 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저렇게 하다니 일반적인 곳은 더 하겠다. 상담은 믿음과 신뢰가 제일 중요한데’, ‘내담자에게 사적 연락을 취하지 않는 것은 상담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등 김 모 씨의 마음에 적극 공감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자취방 청소 후 “술 한잔해요” 연락한 청소업체 직원
지난 12일, 한 27세 미혼 여성이 업체에 청소를 맡겼습니다. 남성 인부 2명과 여자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청소를 했습니다. 문제는 청소가 끝난 그날 새벽, 남자 직원 중 한 명이 새벽 2시 50분부터 5시까지 그녀에게 사적인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너무 예쁘다”, “술 한잔하실래요?” 등 노골적인 관심을 표하는 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나빴던 그녀는 항의하기 위해 담당자와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 예뻐서 그랬나 봐. 젊은 사람들이 그렇지. 그 친구 괜찮아, 만나봐”였습니다.
해당 사례는 개인 정보를 악용한 사례로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등 다양한 언론 기관에 소개되었습니다. 업무를 통해 확보한 타인의 개인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건 명백한 범죄이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해당 직원의 태도와 청소 업체의 대응에 분노를 표하며, 그녀에게 더욱더 강경한 태도로 문제 제기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이렇게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과연 청소 업체에서는 어떻게 추가적으로 대응할까요? 후속 조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규정들
2018년 울산 경찰청은 전국 경찰 중 처음으로 ‘퇴근 후 이성 하급자에게 사적 연락 금지법’을 시행했습니다. 업무 외의 시간에 안부를 묻는 등 업무와 연관이 없는 내용을 전화, 문자, 메신저, SNS 등 모든 경로로 전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퇴근 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취하는 것은 권력관계를 이용한 사생활 침해라고 본 것인데요.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좋은 의도로 연락했다’는 말을 용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인스타그램은 지난 17일, 성인 이용자가 미성년자에게 다이렉트 메시지(DM)를 보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새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청소년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연락을 취하는 것이 연락을 하는 사람의 자유로운 표현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는 연락을 받는 사람의 처지를 고려한 규정이 늘어가는 사회적 변화들이 돋보입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그런 것 잘 몰라, 그냥 사는 거지...” (0) | 2021.04.04 |
---|---|
40년 정치 엘리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생애 (0) | 2021.03.20 |
“쾅쾅 쿵쿵” 코로나 사태 층간소음 화두 속 제도 정비 (0) | 2021.01.26 |
다송한옥목재소 장춘덕 대표, 서울시 우수한옥 인증 받은 고품격 전통한옥 담소재 (0) | 2021.01.13 |
2021 신년사 포스트21뉴스 장민기 이사장, “한계를 정하지 않는 바른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0) | 2021.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