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한석봉서예미술협회 장재명 이사장, 기로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 퇴임... “서예 서각 발전 위한 행보는 변함 없을 것” :: 포스트21 뉴스

(사)한석봉서예미술협회 장재명 이사장

‘담연 갤러리 카페’운영, “서예 서각 발전과 후학양성에 보다 더 힘쓸 것”

[포스트21 뉴스=최원진 기자] 얼마 전 기로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을 퇴임한 서각의 대가 장재명 작가(한석봉서예미술협회 이사장)가 최근 코로나19로 전시회를 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김포시 월곶면에 위치한 ‘담연갤러리카페’에서 발산하고 있다. 이곳 역시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그러나 적은 방문객이더라도 우리 고유의 맛과 멋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작은 희망이다. 먹거리부터 볼거리까지 멀티 플렉스로 운영되는 ‘담연 갤러리 카페’는 서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참신하고 새로운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로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으로 그 역사를 함께 해 온 장재명 이사장 

사단법인 한석봉서예미술협회 장재명 이사장이 최근 대한민국 기로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서각의 대가로 꼽히는 장 이사장은 “기로미술협회에서 퇴임했지만 서예 서각 발전을 위한 행보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향후 서예 서각 발전과 후학양성에 보다 더 힘쓸 것이다.”고 밝혔다. 장재명 이사장은 기로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으로 그 역사를 함께 했다. 

‘서예와 서각의 미’를 전 세계에 알리다

‘기로’라는 단어는 고려 신종 왕 때 문하시랑을 지낸 최당을 중심으로 높은 관직에서 퇴임한 최선, 장백목, 고영중 등 문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문화예술을 즐기던 모임에서 시작됐다. 조선 시대에는 기로소, 기로회, 기영회 등으로 불렸다. 

 

(사)한석봉서예미술협회 장재명 이사장

기로미술협회는 이러한 의미를 이어받아 서예와 미술이 노인들의 취미생활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고취하고, 젊은이들에게 예술의 혼을 전승하고자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터를 잡고 2011년 설립됐다. 해외교류전, 국제기로미술대전, 향토문화미술대전, 대한민국 서화공예명장대전 등을 주관하며 노인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전통문화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 이사장은 서예와 서각의 미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누구보다 앞장섰고 한국의 전통문화예술발전을 위해 온 힘을 다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공로로 많은 단체로부터 표창 및 감사장을 수상했다. 대통령 표창, 문화체육부 장관상, 국회의장상, 서울시장상, 환경부장관상, 코리아인물대상, 미국 오바마 대통령 봉사상 및 예술가상, 미국 FBI감사장, 미주예총상, 한인재단 감사장, 연세대학교 광복관 소장 및 법무대학원장 감사장 등이 있다.  

한석봉의 예술혼과 백인당의 교육혼으로 올바른 인재 양성

장 이사장은 서각에 정통한 대가로, 사단법인 한석봉서예미술협회 이사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석봉서예미술협회는 조선 최고의 명필가 한석봉의 예술혼과 그의 어머니 백인당의 교육혼을 이어오고 있다. 

민족의 서성으로 불리는 석봉 한호 선생의 예술혼을 깨우고 백인당의 훈육 방법을 이어받아 사회에 기여하며 국가발전에 이바지하자는데 가치를 두고 있다. 장 이사장은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는 우리 시절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며 “이러한 예술혼과 교육혼이 후세에 널리 전승되어 국력을 키울 수 있는 올바른 인재가 등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석봉의 이름은 한호다. 석봉은 호다. 1543년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책과 글씨 쓰기를 좋아했지만 가난한 살림에 서당을 다니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백인당이 뒷바라지를 자처하며 한호를 송악(개성)의 한 스승 밑으로 보냈는데, 몇 년간 공부한 한호가 홀로 계실 어머니를 걱정하여 몰래 집으로 돌아온 날, 백인당이 왜 돌아왔느냐고 물으니 공부를 충분히 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백인당은 한호에게 글씨 쓰기와 떡 썰기를 비교해 보자며 불을 끈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 어머니는 떡을 썰고 한호는 그동안 연습했던 글을 써 내려갔는데, 불을 켜고 결과물을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크기도 두께도 가지런한 데 반해 한호가 쓴 글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고 한다. 

아직은 부족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한호는 다시 송악으로 돌아가 공부에 전념한다. 24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활인서별제, 와서별제를 시작으로 사헌부 감찰, 한성부 판관 등을 거쳐 승정원 사자관까지 올라 국가적인 서사업무는 물론이고 외교문서까지 도맡았다. 

한호는 해서, 행서, 초서 등 여러 가지 서체에 모두 능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글씨체를 만들어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선조로부터 극찬을 받았음은 물론이요, 중국에까지 명필가로서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도산서원과 옥산서원 등 조선의 이름난 서원에는 그가 쓴 현판이 지금도 걸려있다. 

문화탐방 및 장학금 지원으로 후학 양성 매진 

한석봉서예미술협회는 한석봉의 예술혼과 백인당의 교육혼을 기리며 매년 5월과 9월에 한석봉서예미술대전과 한성봉휘호대전을 개최한다. 한석봉서예미술대전은 서예는 물론 민화, 한국화, 서양화 등 총 16개 부문으로 개최된다. 한석봉휘호대전은 서예, 캘리크라피, 사군자, 문인화 등을 즉석에서 휘호하는 대회다. 

 

석봉의 후예들이 펼치는 대전의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대전을 치르고 수상자가 선발되면 수상작을 건 전시회를 여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열지 못했다. 매년 가을에 여는 한석봉휘호대전도 취소됐다. 

장 이사장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를 대비해 내공을 다지는 시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여러 형태로 후학양성에 힘써왔다. 모교인 강릉 연곡 초등학교 13대 총동문회 회장으로 연곡 초등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문화탐방을 진행하기도 했고 장학금 지원도 잊지 않았다. 

또 연세대학교 정책 법무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수료하고 대한민국 서각협회회원, 한국 예술문화협회 운영위원, 타임즈코리아 자문위원, 협력위원회 위원장, 서화아카데미 심사위원 및 이사를 역임하며 미술과 서예 분야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멀티플렉스로 운영되는 담연 갤러리 카페 ‘우리의 맛과 멋을 즐기다’
 
장 이사장은 최근 김포시 월곶면 김포대로에 담연갤러리카페를 새롭게 열었다. 이곳은 갤러리와 카페가 함께 운영되는 멀티플렉스로 1층에는 강릉해변막국수 2호점과 담연 갤러리 카페가 운영되고 있고 2층에는 서예 서각은 물론 전통골동품을 전시 판매하는 예술갤러리가 운영되고 있다. 

 

장 이사장은 월곶면 곰바위로에 있던 담연갤러리를 김포대로로 옮겨왔다. 1층에 문을 연 강릉해변막국수2호점은 본점의 인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100% 제주 메밀을 원료로 직접 맷돌에다 갈아 만드는데, 여름에는 막국수가, 겨울에는 따뜻한 메밀 칼국수, 감자 옹심이칼국수, 홍합 메밀 칼국수, 메밀 고기만두, 수육 등이 인기다. 

한 건물에서 맛과 멋을 모두 갖춰놓아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더 풍성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장 이사장은 “2층 갤러리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작가들과 교류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며 “일반인들에게도 우리의 맛과 멋을 알리고, 우리의 전통을 전승하며 계승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포스트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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