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청 김생수 화백, “‘민화’라는 말보다 ‘한국 채색화’로 바꿔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 포스트21 뉴스

김생수 화백 작품 / 주막의 한 때

일제의 잔재로 남아있는 ‘민화’라는 명칭을 바꿔 이제 ‘한국 채색화’로 불러야 한다. ‘민화’는 일제 침략 시절 고미술 수집가인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저평가되어 칭하게 된 한국의 채색화를 말한다. 

우청 김생수 화백은 세월이 지나도 일제의 잔재 속에 만들어진 ‘민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최근 ‘한국 채색화’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채색화로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을 당당히 세계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림은 과거와 현재 잇는 또 하나의 소통의 창

그림이라고 하면 단순한 미적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예술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우청 김생수 화백을 만나고 그림의 본질은 소통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기 전, 그림은 소통을 위한 도구였다.

 

김생수 화백 

우리가 역사를 통해 보아왔던 동굴 속 벽화의 상형문자와 갑골문자 등이 그림의 시초였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그림들이 단순한 기호로 바뀌었고 문자로 발전했다.  예술로서 하얀 여백에 그려지는 그림들 또한 그 시대를 반영하고 풍자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예술로서의 그림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또 하나의 소통의 창인 것이다.

광주 우청미술관 개관, 200여 명의 문하생 배출

우청 김생수 화백은 한국 전통 채색화 작가로 현재 한국미술협회 현대 민화 활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광주지부 전통미술 분과장, 한독 미술교류회 한국회장, 대한민국 전통 채색화협회 고문, 광주 동구 명장협회 감사 그리고 우청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며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김생수 화백 작품 / 장기 까투리

김 화백이 그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7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광 김용대 화백과의 인연으로 전통 채색화를 전수 받고, 예범 박수학 화백의 영향을 받아 한국전통채색화의 계보를 잇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용산 이태원에서 11년간 민속화랑과 화실을 운영했고, 이후 광주로 내려가 우청미술관을 개관하며 지금까지 200여 명의 문하생을 배출했다.

민화라는 명칭은 일본 고미술 수집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저평가해 부른 말

김 화백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5000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 민화에 대해 새로운 시선과 명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화백의 설명에 의하면 ‘민화’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에 의해 지어진 명칭이라고 한다. 

백성 민(民)에 그림 화(畵)를 붙여 ‘민화’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 단어는 당시 ‘일본 천왕의 백성(民)’, ‘조선인들의 그림(畵)’이라는 뜻으로 하찮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일찍이 야나기 무네요시는 민화에 대해 ‘기교가 없고, 단순하며 애처롭다’고 평했다. 이로 인해 민화는 오래도록 저평가 되어왔다. 

 

김생수 화백 작품 / 수토고목

민화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은 국내가 아니라 국외였다. 1933년까지 용산 이태원에서 화랑을 운영한 김 화백은 그 시절 우리 민화를 보며 감탄했던 이들은 대부분이 한국인이 아닌 서양인이었다며 참으로 안타까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민화라고 하면 궁중 미술과 사대부들의 문인화를 제외한 채색화, 신앙화, 산수 수묵화를 칭한다. 이름이 없는 화가들이 그린 세속의 그림으로 본디 우리말은 ‘속화’였다.  김 화백은 이제는 오늘날의 현실에 빗대 현대말로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며 저평가된 ‘민화’라는 말보다 ‘한국 채색화’로 바꿔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한국화’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어야 하는 것

백과사전에 의하면 한국화란 한국인이 한국의 독특한 기법으로 한국의 정서에 맞게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디 아시아풍의 하나로 ‘동양화’로 뭉뚱그렸는데, 1982년 ‘한국화’로 명칭을 변경했다. 

동양화보다 직접적으로 ‘우리의 것’을 내포한다. 민화 역시 한국인이 한국의 독특한 기법으로 한국의 정서에 맞게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한국화의 한 줄기라 할 수 있다. 김 화백은 한국화의 정의에 대해 무엇보다 한국의 정서가 담겼느냐 담기지 않았느냐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한국인이 한국의 독특한 기법으로 그렸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정서와 모습을 담은 것은 한국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채색화(민화)는 한국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한국화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의 현실은 더 춥고 냉혹하다. 2020년에는 전시회도 문화교류도 어려운 한 해였다. 

지난 10월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어렵게 종로구 인사동에서 ‘사제동행 한국 전통 채색화전’을 열었다. 김 화백의 문하생 14명의 작품이 대거 전시됐다. 올해 고희를 맞이한 김 화백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문하생들을 돕는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세계화 시대에 맞춰 우리 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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