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한극(韓劇)의 정립과 우리문화 뿌리찾기’에 매진하다 :: 포스트21 뉴스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여성 최초 연극평론가) 

[포스트21 뉴스=구원진 기자] ‘우리의 것,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이러한 고민으로 25년 전,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하고 우리 연극의 뿌리 ‘한극’을 찾아 그 위상을 밝혀온 이가 있다. 28년간 이화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연극의 발전을 이끌었고, 여성 최초 연극평론가로 활동하며 여성의 위상까지 높인, 현대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 바로 양혜숙 이사장이다. 

‘우리 문화의 뿌리 찾아야 한다’, 신념과 주장 지속 펼쳐 

양혜숙 이사장은 1965년, 독일 튀빙엔 대학에서 독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귀국하여 박사학위를 이어오던 중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교수로 재직하며 1978년부터 서울극평가 ‘그룹’에서 여성 최초 평론가로 활동했는데, 당시 남성 필진 일색이었던 연극 평론 사에 여성 평론의 영역을 개척하며 필진의 80% 이상을 여성 평론가로 만드는 등 문화 예술계에서 여성의 비중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평론가의 시선으로 연극계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국 연극계가 서양 문화로 가득 차 있다는 것에 실망감을 느꼈다. 

 

왼쪽 두번 째 양혜숙 이사장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신념과 주장을 펼치며 필력을 펼쳤으나 정년이 될 때까지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보고 1996년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해 ‘한극의 정립과 우리문화 뿌리찾기’에 매진했다. “글쓰기만으로는 변화가 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만 60세가 되던 해에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했어요. 그리고 한국 연극, 즉 ‘한극’이라는 우리 고유의 극을 연구 조사했죠. 당시 제 마음 깊은 곳에는 ‘한극’이 한글, 한복, 한옥처럼 세계 속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샤먼 문화’ 통해 한극의 뿌리 찾다

‘한극’의 세계화를 꾀하며 우리 고유의 극을 쫓다 보니 그녀는 샤먼 문화까지 분석하게 됐다. 여기에는 ‘굿’이 빠질 수 없다. “사람들이 저를 희한하게 봤어요. 독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굿을 파헤치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우리 전통 공연예술의 근원을 찾아가면 ‘굿’, ‘제례 문화’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 인류의 시원 문화는 신을 숭상하는 제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죠. 저는 그 과정에서 소중한 우리의 것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왼쪽 첫번 째 양혜숙 이사장

양 이사장은 그 과정에서 얻은 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다. 그것이 바로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 <샤먼 문화>, <불교 의례>, <궁중 의례> 다. 또 조만간 <샤먼 문화, 한국 아시아 편>, <전통과 응용> 등도 출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노벨문학상 작가 ‘페터 한트케’ 작품 ‘관객모독’으로 한국연극계의 파란 일으키다

양혜숙 이사장은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한국 연극계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당시 한국극단의 수준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상업성에 저항하며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줄거리와 사건, 무대 장식 없이 오로지 배우가 내뱉는 말에 의존해 극을 전개하는 ‘관객모독’(1975년)은 연극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관객모독>은 독일어권 문학의 이단아로 불리는 노벨문학상 작가 페터 한트케의 작품이다. <관객모독>의 충격은 줄거리가 없다는 연극이다. 스토리가 없이 관객과 연극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바로 관객을 모독하므로, 따라서 관객의 잠자는 피동적인 자의식을 객체인 관객에게 모욕을 주므로써 관객의 의식을 불러깨우는 목적으로 쓰여진 최초의 언어극이다. 

 

희곡의 구성은 사실상 기존 전통극의 공연양식과 구성이 사실상 허구임을 폭로한 형식의 언어극이다. 지난 2019년 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이 극본을 무대에 올린 양 이사장(당시 교수)의 예술적 심미안이 다시 한번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제가 독문학 교수였기 때문에 독일문학 작품을 17편 번역하여 <연극>으로 무대에 올렸습니다. 대학이기 때문에 보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공연을 추구하자 했고 ‘관객모독’도 그런 선택의 일환이었죠. 당시에 큰 화제가 됐고 국내 연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지 않았나. 관객 입장에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그런 공연이었죠”

<업, 까르마(오이디푸스)> 베트남 국제실험연극제서 대상 없는 ‘특상’ 수상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하고 전통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온 양혜숙 이사장은 샤먼 문화를 아시아로 넓혀 다양한 형식과 공통분모를 찾아다녔고 이를 ‘공연예술’로 묶어 새로운 장르를 꾀했다. 극본 <피우다>, <레이디원앙>, <업, 까르마>, <코카서스 백묵원>, <브레히트>, <짓거리 사이에서 놀다>, <우주목Ⅰ-바리>, <우주목Ⅱ-피우다> 등을 무대에 올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우측 양혜숙 이사장 

특히, 그리스신화 오이디푸스를 동양학적으로 분석, 불교의 윤회사상을 담아 그려낸 <업, 까르마>(2002년)는 베트남 주최 제1회 국제 실험연극제에서 대상 없는 ‘특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제9회 Antique Greek Drama Festival>에 초청돼 유럽외권으로는 최초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기록문화유산의 유적지에서 공연하는 기쁨을 누렸다. 

불교에 등장하는 인물을 소재로 한 동화 음악극 <레이디원앙>은 2013년 창작연희 페스티벌에서 인기상을 수상했다. ‘예술가는 무엇이며,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양 이사장은 항상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한국공연예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 예술평론실천상, 문화예술대상, 문화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현재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명예회장, ITI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지역협회’ 창립 초대 회장, 한국 예술평론가 협회 고문, 국제 공연예술교류협회 공동회장, 국제 공연예술연구회 공동대표, 과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다방면으로 활발한 역량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한극’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면 끝까지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확고한 의지와 함께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포스트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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