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구원진 기자] 평창동계올림픽 진부면 홍보관부터 남해군 이순신 순국 공원 호국광장 전(展), 강남 봉은사 초대 전(展)까지 평면도자로 국내를 넘나들며 고난도의 기술을 선보여 온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이 이번에는 칠기(漆器) 도·자기 명예 회복에 나선다.
옹기(甕器, 陶器質)와 칠기(漆器)는 전혀 다른 그릇
칠기(漆器)는 1960년대 까지 부엌에서 흔히 사용된 생활 자기(瓷器)였다. 일부는 이를 옹기라고 알고 있는데, 옹기가 아니고 검은자기를 뜻하는 칠기라는 게 이호영 명인의 단호한 설명이다. “옹기는 도기질(陶器質)입니다. 흙 수비를 하지 않고 황토벽돌을 만드는 흙으로 큰 돌만 걸러내고 숙성시킨 흙으로 성형하고 말려 한 번만 구워요.”
수비는 마른 흙을 물에넣어 고은 체로 걸러서 앙금을 낸다. “수비를 하지 않는다는 건 흙 앙금을 내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 보니 거칠어서 물레장으로 만들지 않고, 코일링 독대장으로 만듭니다. 반면에 칠기는 수비 과정이 있고 초벌과 재벌이 있으며 조각하는 과정도 청자 제조 과정과 같아요. 옹기와는 완전히 다른 거죠.”
그는 도기(陶器) 기술과 자기(瓷器) 기술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며 그 중 자기는 고 난이도가 따른다고 덧붙였다. 이호영 명인이 이렇듯 칠기 재조명에 나서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칠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어서다. 칠기는 우리나라 자기 기술에 중요한 가치이다.
“지금까지 칠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얘기하는 사람이나 문헌을 보지 못했어요. 일부는 옹기랑 청자 중간이 칠기라고 잘못 알고 있고…. 그래서 내가 이것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호영 명인은 칠기 가마를 보존하고 명맥을 이어온 후손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칠기에 관한 역사 어디에서도 볼 수 없어…. 이천시 프로젝트 사업에 ‘칠기’ 포함되어야
칠기는 60년대말 까지만 해도 서민 도·자기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청자 재현 성공으로 서서히 제조가 중단되더니 결국엔 사라졌다. 게다가 칠기에 대해 제대로 조명해 보지도 않고 그 역사마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호영 명인은 “이천 도자기 박물관에도 칠기가 전시돼 있지 않고, 칠기를 제작하고 유통한 선친 이현승 요장은 물론이며 도자기를 연구하고 제작해 온 유근영, 지순탁, 조수서 씨 등도 도자기 작가로만 알려져 있을 뿐 이들이 칠기요장에서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최근 이천시는 프로젝트 사업으로 ‘이천 도·자기 역사’를 정리한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호영 명인은 “이 책에 칠기 도·자기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면 좋겠다.”며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칠기(漆器) 자기(瓷器) 재현할 수 있다”
이호영 명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칠기 도·자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곁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에 똑같이 재현해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칠기는 흙을 배합해 앙금(수비)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철 함유량이 많은 흙으로 만든 유약 그리고 재를 섞은 재유가 필요하며 나아가 장작불로 만드는 그 공정이 또 핵심이에요”
이호영 명인은 이렇게 만들어진 칠기 도·자기를 작품으로 만들어 곧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6.25 직후 전국의 몇 개 안되는 가마마저 없어지고 아버지 가마만 운영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도공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호영 명인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도자기를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은 청자를 만들어 낼 흙이 없어, 선친인 이현승 요장의 칠기 흙으로 청자를 연구 했다.
그러면서 흙 배합을 보완해 가는 등 결국에는 고려 청자를 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60년대 말 까지는 칠기와 청자를 같은 가마에서 소성했던 것이다. “제가 중학교 때 아버지에게 ‘왜 칠기에요?’라고 물으니 칠기는 옹기보다 일곱배나 만들기 어렵고 따라서 옹기보다 그만큼 이윤이 난다고 우수갯 말씀을 하셨습니다. 칠기는 한문의 검은 칠(漆) 자를 써서 검은 자기 칠기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이호영 명인은 “도자기의 역사를 볼 때 칠기는 그 의미가 상당하다”며 “우리의 전통 도·자기들 가운데, 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칠기의 역사 역시, 제대로 정리되어 많은 이들에게 올바로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소원했다. 1960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이호영 명인은 도·자기 장인이었던 외조부 고만수 선생과 아버지 이현승 요장에 이어 3대째 도자기 가마를 지키고 있는 도예 명인이다.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 진부면 홍보관에서 편평하게 만든 평면 도·자기와 새로운 기법 파란 빛의 도·자기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켜 화제가 됐다.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도·자기 전시회를 열었고, 현재 이천시 박물관, 남해 이순신 순국 공원 등에도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평면 도·자기는 말 그대로 평평한 사각형의 도·자기를 말한다. 이것이 특별한 이유는 도·자기를 말리고 굽는 과정에서 수축이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둥근 도·자기가 아닌 평면 자기는 금이 가거나 뒤틀려 깨지기가 쉬워서였다. 많은 자기 장인들이 평면자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호영 명인은 묵묵히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고, 결국 완벽한 평면자기를 완성해 냈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평면자기
남해군 이순신 순국 공원 호국 광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평면자기는 가로×세로 50cm의 평면자기 4,000여 개를 퍼즐 조각처럼 붙여놓은 작품이다. 높이 5m, 길이 200m에 이르는 거대 벽화로 그림 4,000장이 정교하게 일치된 작품이어서 그 의미가 크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관한 이야기를 한국화로 그려냈다.
이호영 명인은 “각 조각의 그림이 딱 맞아 들어가야 해서 난이도가 더 높았다”며 “조각의 색, 크기를 맞추기 위해 불의 강약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등 정말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은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끝으로 그는 “도기와 자기는 구분 돼야 한다”며 “도·자기라 함은 흙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데 고려청자, 고려상감청자, 백자라고 쓰듯이 토기, 도기, 자기로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스트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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