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초대석' 카테고리의 글 목록 (6 Page) :: 포스트21 뉴스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 최광열 대표

국제대회 금메달, 철탑산업훈장 등 다수 수상

[포스트21 뉴스=편집부] ‘여자는 핸드백, 남자는 시계’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자들에게 시계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냄과 동시에 착용자의 품격을 높여주는 액세서리 중 하나로 취급받고 있다. 

작게는 수십 만원에서 많게는 수백, 수 천만원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금액을 자랑하는 명품시계들이 많지만 정작 이 시계를 수리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명품시계 수리라는 전문적인 분야에서 국내 정상을 달리고 있는 기업.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의 최광열 대표를 만나 보았다. 

40년의 관록, 명품시계 닥터 주치의로 비상   

명품이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명품은 TV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나온 것처럼 유럽에서 대를 이은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시계 역시 마찬가지. 

 

사진제공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 


롤렉스나 까르띠에 등 세계 유수의 명품시계들은 일반 사람들은 찾기 힘들 정도의 정교함과 세련됨이 돋보이는 ‘작품’에 가깝다. 특히, 뚜르비옹, 리차드밀, 아 랑게 등 난이도가 높고 상당한 고가인 명품시계의 브랜드 가치는 매우 높다. 내구성도 탁월해 어지간한 문제가 아닌 이상 수십 년도 거뜬히 작동한다. 

그런데, 이처럼 정교한 제품에 고장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품시계는 워낙 정교하기 때문에 그 작동원리를 모르는 이가 함부로 시계를 만지게 되면 오히려 고장이 더해진다. 명품의 수리, 교체가 어려운 이유다. 

“명품은 잘만 관리하면 100년 이상도 문제없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죠. 시계는 생각보다 굉장히 예민하고 정교한 기계입니다. 들어가는 부품만 100~200개고 크기도 0.03~0.08mm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죠. 저는 이 수많은 부품들 중에 고장의 원인을 일으키는 부품을 찾아 수리하는 일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는 국내 최초의 명품시계 수리 전문샵이다. 대한민국에서 명품시계 수리라는 새로운 분야를 소개한 최광열 대표는 올해로 40년째,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장인들이 만드는 작품을 수리하는, 또 다른 장인이 바로 최 대표인 것이다.

끊임없는 공부와 신속한 수리로 고객의 호평 이어져 

명품시계의 본고장은 스위스다. 최 대표는 명품시계를 수리하는 데 스위스의 정통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명품시계는 스위스가 선두에 서 있는 만큼 관련 기술이나 트랜드도 스위스를 중심으로 생성되고 유통된다. 그래서 최 대표는 항상 스위스의 기술을 주목하며, 공부하려고 노력한다. 

 

사진제공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계 속 부품들도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시계에 들어가는 기능도 최첨단으로 바뀌고 있죠. 이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매일같이 공부하고, 시장의 정보를 체크하고 있습니다.” 

피아제, 롤렉스, 까르띠에, 뚜르비옹, 리차드밀, 아 랑게 등 명품 브랜드는 모두 시계에 자신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집어넣기 때문에 명품시계를 수리하는 사람은 관련 브랜드의 기술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최 대표는 지금도 각 브랜드의 동향과 기술을 매일 같이 체크하며 자신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여기다 40년 동안 쌓인 노하우로 1주에서 2주면 완료되는 신속한 수리도 최 대표의 장점 중 하나다.

대학교 시계주얼리학과 출강, 후학 양성 매진 

최 대표는 어린 시절, 시계 학원에 들어가 시계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시계 공부였기에 지인들은 최 대표의 선택에 의아해 했지만, 그는 까르띠에와 피아제 등에 입사하며 본고장 스위스의 시계 기술을 배워나갔다. 

취업 이후에도 시계 기술을 갈고 닦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최 대표는 국내기능대회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국내 시계 기술의 권위자로 거듭났다. 

그리고 1991년, 시계수리 분야에서 철탑산업훈장을 수여 받으며 시계 수리 장인으로 국가에서 인정받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명품시계 수리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최 대표지만 그는 지금도 처음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점을 시작할 때 설정한 믿음과 소망, 친절, 최선이라는 경영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제공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

최고의 자리는 쟁취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이라며 초심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최 대표. 그의 마지막 꿈은 후학 양성이다. 

“명품시계 수리는 기술적인 부분이 중요해서 경력과 노하우가 쌓여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 기술력은 저만의 것이 아니에요. 저 역시 선배들에게 많이 배웠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후학들이 있다면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 기술과 노하우를 모두 전수할 생각입니다.” 

실제로 대학의 시계주얼리학과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최 대표는 훗날 자신과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점의 이름이 곧 트랜드가 되길 소원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바램과 상관없이 이미 그의 이름은 명품시계 수리 업계에서는 전설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장인 기술의 결정체, 명품을 수리하는 또 다른 장인이 바로 최광열 대표와 초이스 명품시계 수리점이 아닐까. POST21 뉴스 

홈런농장 오장훈 대표 선수시절

밀려드는 주문에 이벤트로 준비한 상품, 수시로 완판
인스타그램 통해 소식 들은 야구팬들 성원 이어져 

[포스트21 뉴스=편집부] 짜릿한 묘미를 선사하는 야구선수에서 입안 가득 청량함을 선물하는 농사꾼으로 돌아온 홈런농장 오장훈 대표를 만났다. 그는 야구공 대신 감귤을 손에 꼭 쥐고 농장에서 야구팬들과 만나고 있다. 

올해로 감귤농사 4년 차를 맞이했지만 완벽히 적응한 것은 물론, 새로운 관광산업 아이템까지 개발해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농업인 오장훈 대표와 새콤달콤한 이야기를 나눴다. 

올여름 처음 만나는 ‘야구와 함께하는 감귤농장 체험학습’

신종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자제하는 요즘,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이동이 편리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즐길 거리가 풍성해 친구, 연인, 가족 단위 여행객이 늘어나고 있다. 

제주에 가면 꼭 먹어야 하고 선물로 사야 하는 대표 농산물이 있다. 감귤과 황금향, 레드향, 한라봉은 제주 현지에서 인기가 많은 농산물이다. 직접 농장에 방문해 체험하는 이색 관광 코스도 인기가 많다. 오장훈 홈런농장 대표는 야구선수 출신 경험을 살려 올여름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공 홈런농장 

오장훈 대표는 “야구팬들을 위해 홈런농장에서 ‘야구와 함께하는 감귤농장 체험학습’을 펼친다. 야구장 콘셉트로 진행된다”며 “전 동료 선수들의 도움으로 전국의 모든 프로구단 유니폼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야구와 함께하는 감귤농장 체험학습’은 야구게임 체험존, 스트라이크 던지기 등 오락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으며 야구복과 장비, 밀짚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는 포토존 행사 등으로 구성됐다. 여름철 뜨거운 열기를 막는 자동 차광막을 설치해 시원한 날씨 속에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인생의 9회말 2아웃에서 만난 감귤 농사, 역전 홈런 치다 

홈런농장은 야구를 좋아한다면 꼭 들려야 할 필수 코스가 됐다. 지난 2016년 당시 두산 베어스로 이직한 오장훈 홈런농장 대표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야구팬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상실감을 느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감귤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밑에서 성실함을 배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고 2009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야구선수로서 성공을 앞둔 상황이었지만 순탄치 않았다. 

퓨러스리그 타격 3관왕, 올해의 선수상 수상 등 달콤한 순간은 잠시였다.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하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지만 마운드 위를 내려와야 했다. 

오장훈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투수 전향 후 1군에 한 번 더 올라가 후회는 없다. 지도자를 생각했지만 가족을 위해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홈런농장 오장훈 대표

아버지가 피땀 흘리며 개척한 감귤농장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야구공 대신 손에 착 감기는 감귤을 잡았다.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아버지는 말없이 오 대표의 어깨를 토닥였다. 

부자가 힘을 합쳐 하우스 4,000평, 노지 6,000평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며 황금향, 레드향, 한라봉, 감귤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에게 당도가 높아 인기가 많은 맛의 비결을 묻자 “막걸리, 미생물, 생선아미노 발효액 등 친환경 비료를 사용해 나무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준 것”이라고 귀띔했다. 

제주 향기가 가득한 홈런농장 

제주에 내려오면서 가장 좋은 것은 가족과 같이하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자녀들은 제주의 맑은 바다와 자연 속에서 뛰어다니며 해맑게 웃었다. 제주도의 태양 아래 감귤과 다양한 과실은 달달하게 익어갔다. 

오장훈 홈런농장 대표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반기는 것처럼 파도는 시원하게 몰아쳤다. 야구장이 아닌 홈런농장에서 오 대표는 제주가 주는 모든 것을 누리며 인생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제공 홈런농장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식을 들은 야구팬들, 제주 과일을 좋아하는 고객이 홈런농장을 응원하고 있다. 밀려드는 주문에 이벤트로 준비한 상품은 수시로 완판되고 있다. 올해 설명절 선물용으로 준비한 레드향, 한라봉 상품은 품절됐다. 

그는 ‘홈런농장’이라는 그라운드에서 계속 홈런을 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야구선수에서 삼남매의 아버지로 소박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장훈 홈런농장 대표는 “한 번이라도 더 가서 가꾸고 물을 뿌리고 있다. 매일 밭에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며 “2군에서 홈런왕이 되었지만 1군에서 아쉽게도 되지 못했다. 농사로 평생 홈런을 치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성공하기 위해 모두 도시로 향했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미래 유망산업으로 농업이 손꼽히고 있으며 수완이 좋고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젊은 세대가 대한민국의 농업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사진제공 홈런농장

오장훈 대표처럼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농사에 접목하고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로 보답하는 젊은 농업인들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오 대표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 야구선수로 살아있다. 인생 2막에 만난 감귤 농사로 시원한 역전 홈런을 친 멋진 야구선수로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POST21 뉴스 

노인요양시설 전문요양실 시범사업 지속 참여
대전충남세종지역에서 1차, 2차 참여한 시설로는 유일  
  
[포스트21 뉴스=편집부] 평생 자녀를 위해 헌신한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나빠진 건강에 체격은 왜소해졌다. 아파도 자녀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돼 일부러 꾹꾹 참는다. 

훌륭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최고로 모시고 싶은 자녀의 마음. 노인장기요양기관 주빌리너싱홈은 부모님과 자녀의 진심이 통할 수 있도록 최상의 공간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빌리너싱홈 김선숙 원장은 “지난 2008년 개원 이후 부모님을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모시고 있다”며 “만성질환을 앓고 계신 어르신들의 여생에 행복만 가득할 수 있도록 안락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진국형 전문요양실 모델 개발에 기여하다 

지난해 1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주빌리너싱홈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주빌리너싱홈은 ‘노인요양시설 전문요양실 시범사업’에 참여해 만성중증 수급자 등에게 체계적인 간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요양실 모형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전과 충남 지역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시범공단에 참여한 곳은 단 두 곳. 그중 한 곳이 주빌리너싱홈이다. 이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김선숙 원장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주빌리너싱홈 김선숙 원장

선진국형 노인전문요양기관을 운영하면서 확보한 노하우, 노인간호사회 시설분야 이사로 활동한 경력이 장기요양보험 제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주빌리너싱홈 김선숙 원장은 “어르신들이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기간은 긴 편이다. 내 집처럼 편안함을 드리고 위기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자 전문 인력을 상시 배치하고 있다”며 “사랑과 신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치매, 중풍 등 노년기 만성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전문적인 간호 간병을 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주빌리너싱홈은 올해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요양시설 전문요양실 시범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대전충남세종지역에서 1차와 2차 모두 참여한 시설은 오직 주빌리너싱홈뿐이다. 

만성중증 수급자에게 24시간 체계적 간호 서비스 개발에 착수한 정부를 도와, 주빌리너싱홈은 노인장기요양기관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 서비스, 우리 모두가 완수해야 할 과제 

김선숙 원장은 올해 중책을 맡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김선숙 원장을 ‘장기요양 서비스 모니터단 운영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과거는 대가족 형태로 자녀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사회적 여건과 상황이 달라졌다. 

1인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대부분의 가정은 핵가족화가 되었다. 극심하고 장기화된 불경기로 인해 자녀는 경제활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 틈에 어르신이 있다. 

김선숙 원장은 “만성질환에 걸린 노인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시설은 선진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시설이다. 가족이 노인을 돌보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다”며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너싱홈은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의료, 간호, 주거가 조화를 이루며 어르신 생활의 질을 높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빌리너싱홈은 이상적인 노인 전문 요양시설의 면모를 갖췄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영양사, 의사, 목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화된 50여 명의 인력이 전문적이며 다양한 케어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인력은 24시간 365일 개별 관리해 전문적이며 집중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건강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재활치료실과 물리치료실도 갖췄다. 건물 1층에 위치한 주빌리의원에서 진료를 편리하게 받을 수 있고, 위급한 응급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과의 협진 체계를 구축했다. 

가족과 같은 마음이기에 가능한 차별화된 서비스 

부모님을 직접 모시지 못하는 자녀의 마음은 애통하다. 가장 큰 걱정이 식사 문제이다. 요즘처럼 면역력이 중요한 시대에 음식은 입맛에 맞을지 신경이 쓰인다. 

김선숙 원장은 “주빌리 농장을 운영하며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로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방문한 가족과 오순도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며 “어르신들이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건강한 식단을 매일 드리고 있다. 가족분들의 염려를 덜 수 있도록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별도로 특별식이 필요한 분을 위해 전문 영양사가 상주하며 치료식과 튜브영양식 등 맞춤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주빌리너싱홈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하루가 행복과 웃음으로 가득하다. 

감사패 수상하는 김선숙 원장(우)

다양한 여가, 오락, 외부인사 초청 프로그램, 원예치료, 생신잔치, 야외나들이 등 다채로운 행사를 운영해 지루할 틈이 없다. 휴게실, 영화감상실, 옥외폭포, 연못, 발지압실, 족욕실, 팔각정 쉼터 등 여가시설과 산책공간이 충분하다. 

최근엔 옥상에 골프연습장도 만들었다. 김선숙 원장은 “공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어르신을 모시고 있다. 편안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섬기고 있다”며 “가족을 위해 희생밖에 모르셨던 부모님에게 보답하고 싶은 자녀분의 마음을 담는 사회복지시설이 될 수 있도록 초심을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POST21 뉴스 

대전작명소 태극철학원 송민 원장

대전작명소 태극철학원 송민 원장, “‘내가족이다’라는 마음으로 인생진로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대전이름짓는곳, 대전작명원 좋은 이름은 작명가의 경력과 그의 실력으로 그 사람의 운명이 판가름 난다.

단순히 부르기 좋은 이름이 과연 좋은이름일까? 대전작명소 송민 원장은 30년 가까이 사주명리와 성명학으로 대전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왔다.

“요즘 광고를 통해 입증되지 않은 작명가들이 많습니다. 실력이 출중한 작명가도 있겠지만 그렇지않고 광고를 보고 의뢰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작명가를 선택할때에는 작명가의 이력 및 경력과 작명방법 등 성명학과 명리학의 전문가인지 꼼꼼히 살펴 작명소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생아 이름, 개명할 이름 작명이란 말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운명 사주팔자를 분석하여 음양오행과 자원오행이 요즘 시대에 맞는 좋은 한자를 선택하여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이름을 짓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대전작명원 송민 원장은 "예리하고 정확한 사주분석을 통해 좋은 점, 부족한 부분을 설명하고 기존 이름에 대한 감명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의뢰자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터무니없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개명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주팔자가 숙명적으로 정해진 운명이라면 이름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 수 있는 후천운이요 운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작명소와 다른 점은 송민 원장은 운세 상담가로써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명상수련을 해오고 있다. 작명 의뢰를 받으면 참선 명상 후에 맑은 정신과 기운으로 사주팔자를 분석한 후에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어 윤택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좋은 이름으로 작명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대전작명소 송민 원장은 성명학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진정한 소통과 상담을 통하여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빛을 찾아주고자 부부문제, 가정문제, 이성문제, 자녀문제 등 소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길잡이 역활을 해오고 있다.

오랜세월 인생상담가로써 살아오면서 송민 원장은 “내가족이다” 라는 마음으로 인생, 진로 상담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대전작명소 태극철학원 송민 원장은 그동안 올바른 주역, 명리, 무속문화 정착에 앞장서며 KBS, MBN, TV조선 CSI소비자탐사대, TV조선 세븐 등에 출연했다. 

코리아탑리더스 대상,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위대한 한국인100인대상, 창조혁신 한국인 대상, 대한민국 충효대상, 대한민국 사회발전공헌대상, 대한민국 탑클래스대상 등 언론기관 제정 명리성명학 부문 및 사회봉사 대상을 다수 수상하여 그의 실력을 인정 받고 있다. POST21 뉴스 

국제교육대학 유복균 교수

미국 대학에서 다양한 심리치료에 관한 강의 펼쳐 
‘백약이 무효’인 마음의 병, 트라우마 어루만져주는 것이 먼저

[포스트21 뉴스=유우주 기자] 종양이나 염증 등의 환부를 유발하는 증상들은 적절한 약을 사용하거나 수술 요법으로 제거하면 깨끗하게 낫게 된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아무리 정밀한 검진 기계로 검사를 해도, 그 원인을 쉽게 규명할 수 없다. 

마음의 환부를 치유하려면 내담자의 마음을 열고, 병을 유발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하는데, 그 검진과정이 녹록치 않다.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을 열고 상담에 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고 있는 내담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원인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왜곡된 기억이나 시점, 여러개의 트라우마의 형태 중 부분적일뿐 정확성이 없음) 

국제교육대학의 유복균 교수는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심리치료와 최면치료를 43년간 연구·개발해 온 심리학자다. 최면치료를 통해 마음의 환부를 들여다보고, 다양한 심리치료로 환부를 어루만져주는 치료는 43년간에 걸친 임상경험으로 그 완성도를 높였다.

14세 어린 나이에 우연히 접한 최면치료는 유 교수가 평생 걷게 될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한국보다 선진적인 최면치료법이 보급화 돼 있던 독일, 일본, 미국에서의 유학생활로 다져진 최면치료의 이론과 다양한 내담자들과의 치료과정은 임상데이터로 축적되었다. 

약 260여 가지의 심리질환에 효과가 있는 최면치료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여, 현재까지도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면은 세계적으로 ‘대체의학’으로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최면 전문 클리닉 센터가 설립되었고, 국제보건기구(WHO)에서는 공식적으로 최면을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인정하기도 했다.

 

국제교육대학 유복균 교수

큰 물리적 사고를 겪고 난 후 생기는 ‘외상성 스트레스 증후군’이나 트라우마로 인해 생기는 우울증세에서 야기되는 각종 정신질환들의 치료에 최면치료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 받은 것이다. 

유복균 교수는 이에 그치치 않고, ‘한국 실용 최면심리상담 전문가협회’의 협회장을 맡으면서 최면치료의 대중성 확장에도 힘쓰고 있다.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임상최면가들의 사명입니다.”라며 환자 진료와 대중성 확장의 투 트랙을 밟아나가고 있는 유 교수다. 

유복균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국제교육대학’의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심리, 유아심리, 유아교육, 심리학, 최면학 등의 강의를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퍼시픽대학교에서 최면치료, 심리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의 강의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주임교수로 있는 국제교육대학과 퍼시픽 대학교의 한국최면심리상담최면전문가협회와 MOU체결의 큰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국내에서 심리치료와 최면치료의 대중성 확장에 기여를 했다. 후학을 잘 양성해서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을 돌봐주고 싶다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복균 교수는 6월 말에 정년퇴임을 했다. 쉬는 날 없던 그의 행보는 퇴임 후에도 변함 없어서, 연구·개발해온 모든 자료를 모아 책을 집필하여 최면치료에 대한 대중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공부했던, ‘기공치료’, ‘사주명리학’, ‘풍수지리학’의 지식을 집대성하여 현대의술로 차도가 없는 내담자들의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개발 하는 목표가 있다. 

이외에도 기공치료와 최면치료를 융합하여 만든 ‘기 치료 최면’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단체인 ‘음양도문’의 도주를 맡아 함께 수련하는 제자들과 함께 일반 대중들의 마음 치료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한다. 

“퇴임 후에도 시간을 내어 그동안의 노하우를 한 가정에, 한 사람의 최면사가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이끌수 있도록 되는 그날까지 노력해볼 예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병 치료에 앞장서는 유복균 교수다. 

최면치료를 기반으로 한 심리치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연스러운  최면 상태로 안내하는 ‘자연 최면’의 임상데이터를 쌓고 있는 유복균 교수는 “최면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최면에 대해 불안감과 거부감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분들에게도 불안감이나 거부감 없이 최면치료의 효과를 몸으로 이해시키고 싶습니다.”며 의지를 다졌다.  POST21 






만경궁 나비선녀

사람들과 진심 어린 소통으로 희로애락(喜怒哀樂) 나누고파 

길흉점복(吉凶占卜)의 예언자가 되어 고난과 역경을 미리 탐지하고 방지하는 것은 물론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자, 무당.  

예전에는 무당이 샤머니즘의 민간신앙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의 무당은 인간의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매개체는 물론 마음의 걱정이나 근심, 응어리 등을 해소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 세계와 이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초월적 능력으로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만경궁 나비선녀’가 유튜브 개인 채널을 개설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일전에 전문 무당인들만 다루는 유튜브 통합채널에서 다양한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무당인의 편견을 깨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이번에 유튜브 개인 채널을 개설한 것이다. 

현재 그는 유튜브 채널에서 사례자들과의 전화 상담을 통해 걱정이나 고민 등을 말끔하게 해결해주고 있으며 나라의 전체 운세, 좋은 인연을 만나는 법 등 다양한 주제로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만경궁 나비선녀는 “매체에서 다루는 무당인의 이미지만 보다 보면 당연히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무당인을 향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여러 고난, 걱정, 근심을 해결해주고자 유튜브 개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유튜브 개인 채널을 통해 여러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면서 말끔하게 문제를 해결할 방향성을 제시해줄 계획이다. 

 

개인들의 다양한 삶의 고민거리, 진지한 상담으로 문제 해소 이어가   

5년 차 무당인을 맞고 있는 만경궁 나비선녀. 13살에 신병이 시작된 그는 고민 끝에 신을 받고 인천에서 무당인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다 꿈속에서 계시를 받은 후 경기도 일산으로 거처를 옮긴 후 지금까지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으로 삶의 방향성을 잃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인생의 고난으로 삶이 힘든 세인들의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는 상담으로 익히 알려 진 만경궁 나비선녀. 워낙 예측과 결과가 좋다 보니 입소문을 통해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현재는 상담을 하려면 최소 1~2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워낙 시기가 좋지 않다 보니 생활속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나 장애물 등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주는 분들이 많다. 저는 이분들의 모든 고민을 들어주면서 명쾌한 상담과 기도로 여러 어려움과 장애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절대 긍정의 힘을 믿어야...  

만경궁 나비선녀는 바라는 소원을 제대로 신에게 전달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서로 간의 믿음과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 변화하려고 움직여야 원하는 소원을 빨리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또한 과거에 너무 집착하거나 얽매이면 발전과 성장이 더디어지기 때문에 소원성취 역시 늦어질 수 있으니 ‘나는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렵지만, 곧 잘 될거야’ 등등 항상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주 만물의 기운은 본인의 입에서 나오므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줘야 소원 성취가 빨리 이루어진다. 더불어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에 원하는 소원을 이루려면 차근히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손님들이 저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제가 말하는 부분들을 잘 따라와 줘서 제대로 소원성취를 이루고 기뻐할 때 가장 보람되고 기쁨이 크다.” 

“미래가 불안한 이들 위해 한줄기 빛 되어줄 것”  

만경궁 나비선녀는 자신을 신뢰하고 무조건 믿어주는 손님들이 많다고 하여 절대 자만하지 않는다. 지금도 틈만 나면 유명 사찰을 다니면서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수행한다. 

무당인은 하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 때로는 상담하는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맞게 몸의 반응이 다르게 느껴지고 고통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안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그는 자신의 운명에 그저 감사하면서 고난과 어려움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을 돕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 걱정 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그저 속으로 끙끙 앓고 고민만 하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혼자서 너무 고민하지 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 저는 말 못할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만경궁 나비선녀. 사람들의 불확실한 미래나 불안한 앞날의 한줄기 빛이 되어줄 그의 활약이 앞으로도 기대되는 바이다. POST21 

심천(心天) 송승연 석채화 작가 작품 

‘영원의 예술’ 석채화로 그려내는 예술가의 특별한 인생
 
[포스트21 뉴스=편집부] 개인의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컨텐츠가 각광받는 요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알려져 대중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는 가운데, ‘석채화’라는 특별한 화폭으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가 있다. 자신의 인생을 예술로 승화시킨 석채화 작가, 심천(心天) 송승연이다.

입체적인 색체와 뛰어난 보존성이 강점인 화법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생소한 ‘석채화’라는 화법은 400년 전 인도에서 시작하여 중국을 건너 와 전해진 화법이다. 다양한 색상의 돌을 연마해서 가루를 만든 후, 만들어진 돌가루를 이용해 그림의 원료로 쓰는 방식의 그림예술이다. 

‘돌가루를 원료로 사용하면,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돌들의 색깔 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투박하고 거친 느낌의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우려와 달리, 다른 화법들과 비교해서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색채를 가지는 것은 물론, 입체적인 질감까지 표현할 수 있는 화법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특징을 가지는 석채화를 ‘보석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보석화’라고 부르기도 하고, 보존성이 뛰어나 만년동안 색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만년화’라고 불렀다. 우리가 아는 모든 명화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관리 주체의 각별한 관리를 받으며 작품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심천(心天) 송승연 석채화 작가

하지만, ‘만년화’라는 이름 그대로 석채화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색과 빛깔이 진해져서 ‘나이드는 것이 아닌 익어가는 것’이라는 유명한 노래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작품이다 보니, 그에 따라 작품의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다른 화법들과 다르게 덧칠이 아예 불가능하고 수정도 무척 어렵습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에 가깝게 한번에 그려나가야 하기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는 과정에서도 난이도가 높지만, 석채화가 ‘고난의 예술’로 평가 받는 것은 이미 기성품 원료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원료를 채취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인내와 고통을 요하는 과정들을 겪고 탄생한 석채화는 작가의 열과 성을 공유하듯, ‘영원의 예술’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심금을 울렸던 스승의 작품을 만나, 새로운 인생 찾다

고도의 전문 기술 뿐만 아니라, 원료를 찾아 발로 뛰어다니는 부지런함까지 겸비해야 하는 화법인지라, 전 세계를 기준으로도 석채화 전문 화가는 그 수가 많지 않다. 심천(心天) 송승연 작가의 스승인 김기철 화백은 대가의 칭호를 받은 석채화 전문 화가 중 유일무이한 한국인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시드니, 하와이, 태국 파타야 호텔, 필리핀 국립 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서 초청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김기철 화백의 가르침을 받아, 그 재능을 피워내는 수제자가 바로 송승연 작가다. 

어렸을 때 큰 병으로 고생하며, 젊은 시절을 날려 보내면서 간신히 병마를 이겨냈지만, 아버님과 큰 형님의 연이은 부고로 마음 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심천(心天) 송승연 석채화 작가 작품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과 예술로 슬픔을 위로하던 중, 전라북도 무주에서 본 김기철 화백의 그림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순간 마음 속 한줄기에서 빛이 나와 제 몸 전체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비어있던 마음이 기쁨과 감동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태어나서 처음 해봤습니다.” 

무작정 김기철 화백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길 간청했고, 김기철 화백 역시 ‘사연 있는 작가가 걸작을 만든다’며 가르침을 주었다.

인생이 담겨있는 화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 주고파

심천(心天), 마음의 하늘이라는 뜻은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만든 호다. 이렇게 굳은 의지로 시작한 석채화였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고 한다.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치는 화법의 특성상 처음 두 달 동안은 매일 5시간이 넘게 선만 그리는 지루한 과정을 반복했다고. “힘들었지만, 단 한번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품의 완성했을 때의 기쁨이 더욱 커지는 것을 스승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죠.”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로 석채화를 시작했지만, 특유의 열정과 노력으로 매진한 지 10년 만에 서울평화국제미술제, 한국현대문화미술에서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창작비엔날레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에서의 수상은 물론, 가와사키 국제 아시아미술전에서도 호평 받으면서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상징물과 같은 호랑이, 용, 독수리 등의 동물들을 비롯한 민화를 그릴 예정이며, 태극기를 소재로 한 석채화도 아름답게 그려보고 싶다는 송승연 작가다. 

그는 작가로서의 유명세보다는 자신이 처음 스승의 작품을 보고 느꼈던 감동을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작품으로 감동과 위안을 주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슬픔과 고통 뿐인 삶을 예술로 승화한 송승연 작가와 인내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석채화의 만남은, 과정의 고통에서 걸작이 나온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을 감동으로 승화 시켜주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며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일 것이다. POST21

허브와 알로에 테마농원 김한숙 대표

[포스트21 뉴스=편집부] 잎이 크고 널찍하며 주변에 작은 가시 같은 돌기가 나 있는 식물. 바로 알로에다. 알로에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랜 식물이다. 

면역력 증강, 혈액 순환 촉진, 피부 보습까지. 다양한 기능이 있는 알로에를 개량하여 친환경으로 재배하고 있는 이가 있다. 허브와 알로에 테마농원의 김한숙 대표다.

사포나리아 알로에 전문가로 이름 높아

우리가 흔히 쓰는 알로에는 크게 3가지 종류다. 알로에 베라, 알로에 사포나리아, 알로에 아보레센스. 이 중 알로에 베라가 가장 많이 쓰이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독성이 없어 알레르기를 걱정할 필요 없고, 껍질도 쓸 수 있는 사포나리아가 새로운 알로에 품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허브와 알로에 테마농원 김한숙 대표는 남해 사촌에서 30년 간 사포나리아 알로에를 재배한 알로에 분야의 전문가다. 


사포나리아 알로에는 농약 없이도 해충이나 균이 생기지 않는 작물이지만 온도에 민감해 비닐하우스 없이는 재배하기 힘들다. 하지만 김 대표는 퇴비와 직접 개발한 비밀약품을 이용해 사포나리아를 노지에서 재배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당뇨병과 위염, 아토피, 노화방지 등 다양한 효능을 가진 사포나리아를 주로 재배하고 있지만, 이 외에도 대봉장두감, 허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각농 농사를 짓는 김 대표는 알로에 2000평, 감나무 3500평, 허브 2500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곳에서 몸에 좋은 다양한 농작물들을 재배하고 있다.

100% 천연제품, 알로에 플로라 워터와 로즈마리로 성장세

무려 30년 넘게 농사일에 진력하고 있는 김 대표는 항상 새로운 농사기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남해에 비닐하우스를 처음 들여온 인물도 김 대표였으며 하락세였던 사포나리아 알로에에 집중하여 알로에 전성시대를 연 인물도 김 대표였다. 얼마 전부터는 알로에와 허브의 단점을 개량한 김 대표만의 제품을 개발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4년에 군에서 천연스킨을 만든다는 강좌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천연스킨이라고 해도 마지막에는 꼭 화학제품이 들어가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100% 천연스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제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알로에 플로라 워터죠.” 

플로라 워터는 첨가제가 없는 100% 증류수로 식음이 가능하며 세안 후 스킨, 화장 후 미스트로 사용할 수 있다. 아토피, 여드름, 안구건조증 등에 효과적인 제품으로 김 대표가 3년간의 연구 개발을 통해 탄생시킨 신제품이다. 허브는 로즈마리를 재배하고 있다. 

집중력 향상과 뇌세포 활성화에 특출난 효능을 보이는 로즈마리를 김 대표는 1000평의 농장에서 재배되고 있다.

언젠가 남해에 진동할 싱그러운 허브와 알로에 향기를 위해

23세에 강원도에서 화훼농사를 짓다가 40세 때 귀향하여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김 대표는 원예 분야에만 50년 넘게 종사하고 있다. 

베테랑을 넘어 장인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김 대표. 지금은 매년 꾸준히 이익을 내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농장이지만, IMF 때는 너무 힘겨워 관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당시 모은 돈을 모두 모아서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매입, 농사를 대규모로 확장했었는데요. 마침 딱 IMF가 터져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어렵게 산 땅의 대부분은 물론이고 집도 팔아야 했죠.” 

김 대표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오직 하나, 고향인 남해에 허브와 알로에를 테마로 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월 5일, 마침내 허브와 알로에 테마농원이 개원하면서 그의 꿈은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지금은 테마공원만 조성되어 있지만 추후에는 해수욕장과 사촌마을이 연계되는 신개념 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는 튤립과 수선화, 글라디아스 백합 등 보기 좋은 꽃들을 농원 곳곳에 재배 중입니다.” 

언젠가 주변 마을 6개가 이어진 거대한 테마농원을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 허브와 알로에 냄새가 방문객을 반기는 싱그러운 남해의 모습을 그려본다.  (문의) 010-2240-0473



수경학의 대가(大家) 백파 원장

삶의 태도를 교정하고 필연성을 깨우치는 학문 수경학 

[포스트21 뉴스= 편집부] 나무의 근본은 뿌리다.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다. 또한, 나무가 크든 작든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로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뿌리가 있다. 

인간 각자만의 운명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나듯 운명은 바꿀 수 없지만, 타인에게 거짓 없이 선하게 살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수경학은 바로 이와 같은 철학을 담고 있다. 목숨 수(壽), 거울 경(鏡)을 내재하는 수경학은 어떤 사람을 보면 거울을 들여다보듯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의미의 학문으로 백파카운셀러의 백파 원장이 창시했다. 

백파 원장은 “수경학은 미신이 아니며, 종교를 떠나 존중받을 만한 우주적 성찰을 근거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경학은 인간의 삶의 태도를 교정하고 필연성을 깨우치는 기능도 있다.”고 덧붙였다. 

천삼라지만상(天森羅 地萬象) 진리 깨닫고 학문적 이치 추구하다  

“인간은 반드시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 마디가 생기며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가 열리죠. 이처럼 운명은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듯 바꿀 수는 없지만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동양철학의 사상이 담긴 수경학의 창시자 백파 원장은 현재 국내의 유일무이한 수경학 대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그의 삶이 언제나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 빛을 본지 8개월 만에 전염병이었던 호열자 병으로 아버지를 잃고 9일 만에 어머니마저 잃은 그다.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 절에서 송파 큰 스님의 도움을 받아 자라오면서 10여 살부터 지금까지 수경학에 관한 공부를 이어왔다. 

“합천 해인사의 큰 스님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큰 은혜를 받은 저로서는 그 도리를 다하고자 저의 삶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천삼라지만상(天森羅 地萬象)의 진리를 깨닫고 학문적 이치를 추구하며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상담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저의 업입니다.” 

이후 송파 큰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당시 부산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과 부산의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 도움으로 부산에서 처음 상담업을 시작했다. 

그의 실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 각지에 있었으며 그 당시 국가 수뇌부의 높은 사람들과 굴지의 재벌이 된 많은 기업 회장들의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그에게 상담을 받으려면 3~4일은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백파 원장은 돈과 세상 물정보다는 오로지 상담과 수경학 공부에만 집중했다. 

오랜 세월동안 내방인들의 상담을 도맡아 오다보니 수경학 학문의 깊이는 더욱 심오해졌다. 43일 동안 단식을 통해 인내의 경지에 올랐으며 뛰어난 통찰력으로 세인들의 고단한 인생을 해결해 주는 안내자가 되었다.    

수경학을 통해 운명을 통찰하다

현재 백파 원장은 수경학을 바탕으로 사업, 직업, 풍수지리, 운세, 작명 등 다양한 분야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사주는 세분화하여 판단하는 것은 물론, 상담자의 본이나 지역까지 감안하여 상담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체계적이고 세심한 상담으로 인해 지금도 백파 원장의 충북 청주 제1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제2사무실은 예약 없이는 상담이 불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데 그러기에는 반드시 운이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소중한 자녀를 둔 부모로써는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으나 반드시 인간은 누구나 운명에 따라서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백파 원장은 이어서, 첫째 맞지 않는 부부는 파탄이 생기고 둘째 맞지 않는 직업은 실패를 초래하며 셋째 맞지 않는 이름과 사업상 상호는 반드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주를 볼 때는 당사자의 부모 사주도 함께 봐야 한다. 상담자가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허물없이 털어놓는 과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통찰력 있는 카운셀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의 흔적을 따라 오로지 난해한 수경학 학문의 정립을 위해 모든 역량을 다해오는 동안 우리나라 근현대사 변천이 이뤄졌다. 그 사이 일찍부터 세종시를 예견하고 과천청사, 동작동 국립묘지 터의 자리도 안내해 주었을 정도로 풍수학에도 일가견을 인정받았다.  

이렇듯 그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정재계인들을 비롯해 유명인들도 다수 있다. 특히, 풍수지리에도 탁월한 혜안을 가져 묘 자리를 알아 봐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공명정대한 사회위한 봉사와 나눔 적극 실천 

백파 원장은 사회의 비정한 논리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로지 수경학 공부에만 집중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말이다. 때문에 그는 공명정대한 사회를 위한 봉사와 나눔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어렵고 그늘 진 곳에 있는 우리의 이웃에 대해 따뜻한 제언을 전했다. “정직하고 어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공을 들이다 보면 좋은 덕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항상 상기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든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삶을 가볍게 살아 간다면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어요” 

지역 봉사활동, 나눔 활동,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밥차’ 활동 이외에도 다양한 기부활동을 이어나가는 등 사회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상담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상담료를 일체 받지 않을 정도로 정직한 카운셀링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백파 원장은 2002년부터 미국의 한인방송과 CBS방송 등에서 5년간 재미교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수경학 상담 활동을 펼쳤으며, 미국, 중국 등 세계 39개국으로 특별 초청되어 국운과 글로벌 기업의 장래를 카운셀링하기도 했다. 

백파 원장의 수경학은 인간의 운세를 넘어 국가나 기업의 명운까지 헤아리는, 미래를 보는 학문이다. 

창조주에는 이르지 못해도 선지자격의 경지에는 이를 수 있는 학문인 것이다. 우주 만물에는 천상운행법칙과 지상자연법칙이 있다. 이러한 법칙이 인간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따라서 우리는 수경학을 통해 우주 만물을 이해하고 우리 운명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미래를 예시하여 우리의 참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백파 원장은 수경학은 사주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인 명리학 단계보다 위에 선 학문이기에 그 토대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자신은 아직도 배움을 이어나가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간혹 사람들이 저에게 풍수지리학자인지 명리학자나 철학자인지 묻습니다. 때로는 점성가인지 묻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마다 우리가 쉽게 만나는 예언가나 점쟁이가 아니며, 명성을 위해 철학관에서 예언하는 사람도 아닌 수경학자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저는 아직 수경학을 통달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배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수경학을 충분히 거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겸손함을 잃지 않고 관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희망을 선사하는 백파 원장의 빛나는 카운셀링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POST21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세계 유일무이한 ‘평면도자’ 탄생

[포스트21=박윤선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관이 위치한 진부역에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의 ‘평면도자’. 그가 평생을 통해 완성한 평면도자는 일반 도자기와는 달리 평평한 모양으로, 구어 내는 방식은 일반 도자기와 같지만 그 과정은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는 처음 말리고 초벌하고 다시 재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의 크기보다 17%~20% 수축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둥근 형태의 도자기는 크기도 작고 둥글어서 수축할 때 모양의 변형이 적지만 이호영의 평면도자는 크기가 2m에 이르는 대형 평면이기 때문에 말리는 과정과 굽는 과정을 거치면서 금이 가거나 뒤틀려지고 깨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도자기를 굽는 장인들은 하나같이 대형 평면도자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호영 명인은 누구도 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갔고 결국 완벽에 가까운 평면도자를 탄생시켰다. 물론 도자기를 굽는 다른 사람들도 작은 크기의 평면제작은 가능하지만 그 크기는 고작 30~ 60cm 정도에 불과하다.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평창동계 올림픽 이후 이호영 명인의 작품은 남해군 이순신 순국공원 호국광장에서 빛을 발한다. 가로세로 50cm의 평면도자 4,000여 개를 마치 퍼즐 조각처럼 붙여 높이 5미터*길이 200미터에 이르는 거대 벽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그냥 평면 도자기를 굽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난이도는 더욱 높다. 그 이유는 도자기에 노량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화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면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들 4,000장이 서로 정교하게 일치되어야 해서 그림의 색까지 하나하나 살피며 불의 강약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등 그 과정은 고난 자체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기네스북에 등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세계 최고 규모의 작품이 되었다. 

이후 이호영 명인은 2019년 5월 서울강남 봉은사에 초대되어 평면도자 20여 점과 이호영 유약의 별밤 도자기를 전시했다. 

‘선(禪) 흙에담다’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서 이호영 명인만의 독창적인 유약과 불의 조화로 완성된 작품인 푸른 빛의 도자기, 상감청자기법을 활용한 평면도자, 마애여래상으로 불심을 표현한 작품 등을 선보였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도예 명인 가문

지금까지 30년 이상 예술인으로 활동하며 서양화로 시작해 전통도자, 조각, 평면도자 등 다양한 영역으로 스펙트럼을 넓혀온 이호영 명인의 집안은 외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를 거쳐 3대째 도공의 길을 걷고 있는 도예 명가이다.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현재 그의 형과 외갓집 가족들 모두가 도공으로 외조부 고만수 선생, 작은집 외조부 고만식 선생이 칠기 가마를 운영했다. 

그의 아버지 고(故) 이현승 선생도 일제시대와 6.25동란에도 꿋꿋하게 가마를 지켜왔고, 해강 유근영, 신상호, 이준희 등 원로 도예가들이 그 가마를 거쳐 작품 활동을 펼쳤다. 

가마터와 도예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었던 이호영 명인은 1985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도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던 것은 아니다. 

이호영 명인은 항상 도자기를 만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답답함과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작품을 빚어도 저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그냥 내가 보지 못한 도자기, 그 미지의 세계를 담고 싶은데 혼신의 힘으로 만들어 놓고 또 만족하지 못하니 고난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숱한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고 마침내 완성한 분야가 평면도자이다. 대형 평면도자는 흙을 완전히 익히는 기법을 사용한다. 즉, 도자기를 자화시키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사용하는데 그것도 건식이 아닌 습식으로 제작한다.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이는 외국에서 도자기를 자화시키지 않고 도기처럼 겉만 익힌다거나 가루를 반죽하여 건식으로 편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 겉모습만 평면도자로 만드는 방법과 비교된다. 

그런 방식으로 제작할 경우 흙이 수축될 때 변형이 적어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호영 명인이 만드는 평면도자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완전히 자화된 습식 평면도자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식으로 평면도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려는 지고한 이호영 명인의 열정 때문이다. 

“고려청자는 500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저는 평면도자에도 고려청자를 탄생시킨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500년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잃지 않는 도자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바람이 이뤄진 것이지요.” 

활용도 높은 작품 만들고자 노력

우리나라 칠기(漆器)는 까만 전통 도자기로 전후(戰後)에는 청자 흙을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칠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흙으로 청자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옹기의 경우 흙을 수비하지 않고 그냥 만들지만 칠기의 경우는 청자처럼 흙을 수비하여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기가마를 가지고 계셨던 선친의 흙을 사용하여 해강 선생 등이 청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칠기는 옛날 부엌의 찬장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조그맣고 까만 도자기로 유리가 보급되기 전에는 간장, 고추장 같은 장이나 술을 담는 용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작품 전시 중 /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칠기의 경우 6.25전만해도 대부분 집안에서 사용할 정도로 활용도가 높았지만,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다. 옹기와 칠기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옹기는 한번만 굽고, 칠기는 초벌과 재벌을 한다. 

또 옹기는 수비(점토만들기)를 하지 않지만 칠기는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흙을 수비해서 사용한다. 옹기는 도기고 칠기는 흙이 자화되어 자기에 속한다. 

칠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민도자기로 많이 사용되었고 도자기의 역사에서 볼 때 그 의미가 큰데 칠기에 관한 연구는 너무도 미흡하다. 이호영 명인은 칠기가마를 보존하고 명맥을 이어왔던 집안의 후손으로 그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이호영 명인은 우리나라 칠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여 이를 재현하고 그 성과를 토대로 칠기 전시회를 개최하려고 계획 중이다. 더 나아가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활용도 높은 평면도자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도자기는 그저 감상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러한 틀을 깨고 평면도자가 작품임과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은 첨단 소재로서의 도자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목판이기에 보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불교 문화재를 평면도자로 복원제작하면 보존이 쉬워지기에 이를 대중에 공개하는 작업을 해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고 성남모란민속공예전국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호영 명인은 2014년 한국예술총연합회가 선정한 명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 도예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어내고자 노력 중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도자기 작품을 만들려는 이호영 명인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 POST21 











[포스트21 뉴스=편집부] “독도는 ‘불타는 어름’이라 불리는, ‘메탄 하이드레이트’라는 차세대 가스가 6억톤이나 매장된 에너지의 보고입니다. 또한, 금속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검정색 광물덩어리 ‘망간단괴’라는 광물도 매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최근 인사동비엔날레 부총재를 역임한 서예가 예당 지영호 선생의 설명이다. 독도를 탐내는 일본의 야욕은 끝이 없다. 최근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가 실시한 동해영토수호 훈련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 정부는 독도와 그 인근 동해를 지키기 위한 군사적 훈련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지난해부터 명칭을 독도방어훈련에서 동해영토수호훈련으로 바꾼 것도 독도 분쟁의 소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지로 풀이된다.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독도 수호 외에도 민간 차원에서도 헌신하는 종합예술인이 있다. 예당 지영호 선생은 ‘독도지적 광업권 설정출원’에 나섰다. 

국민이자 종합예술인으로 독도 수호에 헌신

예당 지영호 선생은 “독도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독도 해역에 풍부한 지하자원과 어족자원을 탐사하고 채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이자 자원 전문가로 광업권 출원에 나선 것은 독도의 소유권이 대한민국에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과 앞으로 우리의 역사를 써 내려갈 후손들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밝혔다. 

 

지영호 서예가

‘독도지적 광업권 설정출원’의 시작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업자원부가 고시한 광업업무처리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독도가 우리나라 광업지적에 포함됐다. 

이는 곧 독도의 지하자원 개발이 가능함을 뜻한다. 독도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지역이라서 광물 채굴과 자원 개발을 우선했다기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예당 지영호 선생은 “현재 생태계 보전과 신종코로나 사태로 개발을 제한하지만 훗날 해양탐사 해저채굴기술 등이 개발되면 독도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하는 곳이 될 것이다”며 “‘독도지적 광업권 설정출원’은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독도를 탐사하는 국민의 활동 내용은 일본이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고 말했다. 

평생 한국을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 

예당 지영호 선생은 산업자원부에서 정년퇴임을 마친 후 제2의 인생을 대한민국 수호에 바치고 있다. 1990년대 서예에 입문해 30년 경력을 쌓은 서예 작가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서예를 통해 민족의 혼을 되찾는 예술가로 활약하면서 국가관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등을 섭렵한 후 비로소 초서체의 외길을 걷게 됐다. 운당 정영채 선생의 애제자로 추사 김정희 시대까지 전승되었다가 맥이 끊어진 현완법을 사사했다. 

 

지영호 서예가 작품 

오랜 시간 인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우리나라 초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동양서예협회 대상인 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 

공익시절부터 늘 붓을 가까이 하며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완성한 예당 지영호 선생은 다른 분야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96년 한국장애인역도연맹을 설립한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 

서예와 닮은 역도의 부흥을 꿈꾼 예당 지영호 선생은 “역도의 정신이 서예와 많은 부분 다르면서 닮았다”며 “정해진 규격과 중량 모양, 시간을 기초로 일정한 규율을 준수하는 스포츠 역도,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바탕으로 화선지에 담는 서도 모두 기본자세가 발끝부터 머리까지 정중동이며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이 일치한다”는 소신을 전했다. 

이러한 신조가 대한역도연맹 역도인으로 애틀랜타 패럴림픽에서 한국장애인역도가 세계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예술혼, 대한민국을 위해 불태우다 

예당 지영호 선생은 서예가이면서 사진작가, 시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일보 사진작가,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으로 활약하면서 깊이 있는 사진예술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화백문학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당당한 면모를 드러냈다. 예당 지영호 선생이 출간한 두 권의 시집을 통해 종합예술인으로서의 다채로운 매력을 뽐냈다. 조국인 대한민국과 예술을 사랑하는 예당 지영호 선생의 방식은 우리나라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저서- 지영호 서예가

여러 시도를 통해 세계에 메시지를 전하는 예당 지영호 선생의 열의는 예술적 감성과 힘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담겨 있다. 

인사동비엔날레 부총재, 초우문학사 이사, 초우문학회 백일장 대상, 동양서예협회 운영위원(심사위원), 한국서화협회 초대작가, 한국서화교육협회 초대작가, 중앙서예협회 초대작가, 경기도서화교육협회 원로작가, 한-중 교류전 초대작가, 한-일 교류전 초대작가, 한-중-일 초대작가전 심사위원, 충북역도협회 원로 등 수많은 자리에서 예당 지영호 선생의 가치가 빛나고 있다. 

예술과 냉철한 현실적 판단을 통해 소통하겠다는 예당 지영호 선생이 귀감을 사고 있다. 독도를 지키고 서예 문화를 발전시키며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한 예당 지영호 선생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POST21  

신천학회 유연승 의전실장

[포스트21 뉴스=오현진 기자] 대대로 문필을 배출하는 가풍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글을 가까이한 인물이 있다. 여동생과 달력에 적힌 십이지를 보며 주역 및 사주명리와 친숙해졌고 부친의 말씀대로 ‘독파만권시통신(讀破萬卷始通神)’하며 신천철학을, 전수받을 역량을 갖췄다. 

시대적 상황에 부흥하는 신천학회 조직을 운영하며 가업을 이어받은 신천학회 유연승 의전실장.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라는 불운한 사태에 직면하여 풍전등화와 같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육십갑자로 분석해 예측하며 “맡은 생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연승 의전실장으로부터 인류역사와 국가의 운명의 비전을 제시하는 생활종교인 신천교의 현재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신천학회의 뿌리 

신천학회 유연승 의전실장의 선대는 학문을 닦으며 관계(官界)로 나아가 보국안민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아 벼슬을 한 선조들이 대다수였다.

 

또한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사주명리학과 한의를 중심으로 활인(活人)을 하였으며 특히 고·증조 때와 조부 때까지는 인술(仁術) 및 활인업을 해왔다. 

가문의 영향을 받아 부친 대에 이르러 가업비법 등을 참작, 세계최초로 신천철학을 창시했다. 이어 신천학회 유연승 의전실장은 5대의 가업을 전수받으며 최근 조직 개편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학회장을 중심으로 최소 조직으로 운영을 지속하며 시대적 상황에 따라 유연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조직의 확대와 축소 등 사회적 요구에 맞게 조직을 움직이며 원활하고 힘 있는 신천학회를 유지하고 있다. 

유연승 의전실장은 “고조부로부터 사주명리학은 집안의 가업이 됐다. 신천학회의 토대를 마련했고 부친 대에 이르러 신천학(철학·종교)을 창시했다”라며 “비단, 어느 국가나 특정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 및 인류에게 통용되는 진리적 사상을 구축한 것이 신천학이다. 신천학의 출발점은 한국이다”라고 밝혔다. 

신천학은 한국에서 제일 먼저 국민 통합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며 세계로 뻗어나갈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신천학에서 탄생한 신천교, 국민에게 다가가고 세계를 향하다 

신천학의 진리적 이론은 신천철학이며 사상적 이론은 신천종교이다. 인간은 과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명제로 시작해서 대우주 곧 대자연의 섭리에 준한 인간의 생로병사를 학문적 가치에서 구현한 진리인 입태(入胎)·출생(出生)·부생(復生)·임종사주(臨終四柱)를 밝히는 것이 신천철학의 뿌리에 해당한다. 

 

신천은 주재주 신(神)과 대우주 천(天)으로서 하늘의 신인 창조주 또는 조물주를 뜻한다. 신이 창조한 대우주의 섭리에 진리를 학문적으로 인간에 적용한 것이 신천철학이며, 그 창조주 신을 숭배하고 위대한 절대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생활종교인 신천교이다. 

신천교는 요즘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어수선한 시국에 방황하는 국민을 바라보고 있다. 급작스러운 시대 변화로 혼돈에 빠진 사회가 바로설 수 있을까. 

유연승 의전실장은 “육십갑자로 볼 때 1984년부터 60년간 2044년까지 현재로 24년이 남아있는 이 시기가 하원갑자이다. 여성상위와 물류의 시대로 인류사회와 같이 해온 질병의 하나인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으나 한국은 내년 연말이면 종식이 될 것으로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라고 설득하며 “맡은 바 생업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생활하길 바란다”라며 다독였다.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국민의 눈물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문하생 양성과 천하의 인재들을 공개 채용해 등용시키는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신천철학사로서 의전실소속의 조직 및 법무·비서·경호·전산실 등을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청사 건립, 한국과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우선적으로 포교를 통한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과 미주 등 영문화권에도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가업의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며 후세대들이 신천학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틀을 다지고 있다.

신천의 진리와 사상 이어받은 신천학회

동양철학인 명리학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6,000년 동안 인간 사회에 공헌한 업적이 있다. 명리학은 이미 검증된 실증학문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신천학회 유혜식 회장 

그동안 명리학은 중국 송 대에 서자평이 그동안 연주(年柱) 중심에서 일주(日柱) 중심으로 사주감정에 혁신을 가해 현대에 이르렀다. 이제 사주명리학을 체계화하며 발전시킬 국가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한자문화권인 동양삼국 중에서 약 900년 만에 유혜식 회장에 의해 신천철학(입태·출생·부생·임종사주)과 신천종교가 창시되었다. 신천학회가 인류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다. 

유연승 의전실장은 “현재 신천이 철학과 종교분야에 상표등록 제45류 종교모임 조직업 등 11개 항목으로 특허청에 등록했다”라고 설명했다. 

유연승 의전실장은 어렸을 때부터 선천철학을 창시한 부친의 삶을 그대로 본받았으며 고교시절부터 관상, 수상, 명리학을 공부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해군에서 복무하며 전우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고 새해 첫날 고속단정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떠오르는 태양과 중천에 떠있는 태양, 지는 태양이 화평을 이룰 때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는 이치를 가슴에 새기고 신천학회를 이끌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신천학회가 평화로운 세상의 문을 열길 기원한다.   POST21 NEWS 

 

김종민 회장

노블리스 오블리제 몸소 실천하는 기업인
예술작품보다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 한 눈에, 고급 힐링 리조트

[포스트21 뉴스= 김민진 기자]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고즈넉한 푸른 바다, 세상을 환히 비추는 일출, 산 전체를 물들이는 붉은 노을,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을 떠나고 좋은 숙박업소를 찾아 헤맨다. 

탁 트인 바다가 일품인 남해 언저리에, 현대인들이 원하는 고급 힐링 리조트가 있다. 바로 EG미조힐링리조트다. 최근에는 이 곳 인근에 ‘스카이워크’가 완성 돼 여행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지미조힐링리조트

즐길거리가 많은 최고급 리조트, 방문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 선사

이지미조힐링리조트는 2016년 오픈한 남해의 최고급 리조트다. 남해 미조항에 위치해 있어 모든 객실에서 푸른 남해 바다를 관망할 수 있다. 인근에 한국 3대 기도처인 보리암이 있고 일출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룬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해수욕이 하고 싶을 때면 바로 앞에 있는 남해 송정리 설리 해수욕장으로 향하면 된다. 붉은 지붕의 독일마을과 다랭이마을, 해오름 예술촌, 원예 예술촌 등도 인근에 위치해 있는 데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리조트다. 

최고급 리조트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내부 시설 역시 화려하면서 깔끔하다. 소파와 가구는 높은 품격을 나타내며 실내 공간은 일반 펜션보다 3배 정도 넓게 조성되어 있다. 구성 역시 독특하다. 

보통은 일반 가정집처럼 침실과 거실, 화장실,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지미조힐링리조트의 모든 객실은 침실과 거실, 2개의 화장실, 휴게실, 럭셔리 스파와 월풀로 구성되어 있다. 

베란다에서는 바비큐를 즐길 수 있으며 흔들의자에서 여유로운 바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스페인과 이태리산 고급자재를 이용한 가구는 모두 고급으로 꾸며져 있고, 음향기기는 물론이고, 핸드드립 커피와 각종 간식거리도 제공된다. 

결혼식이나 피로연 등 단체행사도 자주 개최되는 편. 통상 일반적인 리조트는 바다 뷰와 산 뷰가 나뉘어져 있고,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만, EG미조힐링리조트는 모든 객실 침대 위에서 일출을 바라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 EG미조힐링리조트는 오픈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픈 첫 해인 2016년 코리아 탑리더스 대상을 수상했고, 오픈 준비 중인 2015년에는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 리조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고객의 니즈와 력셔리함을 모두 갖춘 리조트로 정평이 나며 수 많은 고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서

EG미조힐링리조트의 김종민 대표는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건하우징과 제이엠건설의 CEO를 역임한 그는 조경업, 건축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업의 베테랑이다. 

극도의 가난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여 지금의 자리에 오른 김 대표는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으며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려 노력한다. 

이지미조힐링리조트

무려 20년 넘게 어려운 이웃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쳐 온 김 대표는 제47대 마산로타리클럽 회장, 이건장학재단 이사장 등 많은 봉사단체를 경영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는지, 일일이 셀 수가 없습니다. 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제가 깨달은 건 이 세상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거에요. 남을 돕는 일은 도움을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의 마음마저 행복하게 합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길. 봉사의 의미는 거기에 있죠.”

소외계층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에서 귀감 

EG미조힐링리조트를 건립하고 나서도 김 대표의 봉사 러쉬는 계속되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결손가정과 소외계층 자녀들을 위해 그들의 가족을 리조트로 초대, 1박 2일 동안 푸짐한 음식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른바 ‘가족힐링캠프’, 약 20여 가족을 초대해 진행하는 이 같은 봉사형식은 국내 리조트 업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리조트가 위치한 경남 검도 육성학교와 검도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경남 검도회 회장으로서 직접 검도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마산 가포고, 김해 영운고, 영산대학교, 경상대학교의 유명 선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매 년 다양한 방식을 통해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김 대표의 행보는 지역에 많은 귀감을 사고 있다. 

“봉사는 단순히 봉사를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회를 지탱하고,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는 게 바로 봉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뒤로 하고 나 혼자 성공하면 뭐 합니까. 주변에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사람 하나 없는데. 그런 삶보다는 조금 덜 성공해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요.”  

가운데 유효진 양 / (우)유복균 교수

몸의 질병보다 아픈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빙의·최면치료의 달인

[매거진 포스트21=유우주 기자] 보이는 환부를 투약과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몸의 병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나를 좀먹게 되는 마음의 병은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 

쉽게 제거되지 않는 마음 속 상처를 달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해 42년간 최면·빙의 치료를 연구하고, 여러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단체들을 설립·운영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이 있다. ‘국제교육대학’의 유복균 교수다.

잠재의식은 마음의 병을 확인하는 MRI

기(氣)치료와 최면 치료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신뢰성이 낮은 치료에 속한다. 몇몇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이미지 소비가 되었고, 비전문가들에게 치료받은 후 효과가 없었던 후기가 많이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려 섞인 시선과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이미 잠재의식의 구현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치료법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상담과 투약이 주 치료법인 현대의학에서의 정신질환 치료는 환자의 숨기고 싶은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끄집어 내야하는 부분에서는 부족하다. 하지만, 최면 치료는 ‘유도암시’로 환자의 잠재의식 속 내재되어 있는 트라우마를 발견하여 치료한다. 

환부가 보이지 않아서 근본적 치료가 힘든 마음의 병을 MRI처럼 환부를 발견하여 근본적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세계의 입지 있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서의 ‘최면’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교과목으로 채택하였다. 

특히, 하버드 대학에서는 최면 전문 클리닉 센터가 설립되었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최면을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정도다. 

근래에 큰 주목받고 있는 정신질환인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현대인들이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우울증세’, 그리고 그 외의 각종 정신질환들의 치료에 최면치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면치료 유학파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유복균 교수는 42년 동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최면치료 요법들을 가다듬어왔다. ‘최면 선진국’인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직접 최면을 배우고, 환자들을 대상으로 최면치료의 임상데이터를 축적해왔다. 

260가지의 마음의 병에 대한 치유가 가능한 최면치료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여 연구와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 결과, 약도 치료도 듣지 않는 환자들에게 효과를 본 기(氣)치료와 최면 치료를 합친 ‘기 최면치료’를 만들어냈다. 

기 최면치료란 최면 상태에서 신체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인간이 가진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 시키는 치료법이다. 

(좌)진선미 회원/ 유복균 박사

또한, ‘해리 장애’로 일컬어지기 쉬운 ‘빙의’ 상태의 마음의 병을 가진 내담자들을 위해 영적 접근으로 빙의한 원혼을 발본색원 해내서 기 치료로 치료하는 ‘빙의 치료’ 역시, 병원과 무속인들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빙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면·빙의 치료의 보급화를 위한 발걸음

유복균 교수는 ‘한국 실용 최면심리상담 전문가협회’, 기공 및 기치료의 특화된 인재를 길러내는 ‘음양도’ 등 수련 단체들을 이끌며, 최면치료와 빙의치료의 보급화에 앞장서고 있다.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임상최면가들의 사명입니다.” 마음의 병을 앓다가, 효과를 본 후 유복균 교수가 이끌고 있는 협회원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회원들이 많다. 

국토교통부 주최, 한국 감정원 녹색 건축에 대한 공모전에서 캐릭터 부문 장관상(대상)을 수상한 유효진 양은 ‘한국 실용 최면심리상담 전문가협회’의 자원봉사(디자인)회원이다. 

이외에도 ‘음양도’의 치료사들은 지리산에서 기 치료 세미나를 여는 등 ‘기최면 치료’ 인재를 길러내고, 내실을 닦고 있다. 

각기 다른 마음의 질병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오늘도 유복균 교수는 최면치료를 근간으로 한 다양한 치료법을 연구·개발한다. 

후학을 잘 양성해서 우리나라 사회의 마음의 병을 돌봐주는 일에 크게 기여하고 싶다는 유복균 교수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가득했다. 

한국 실용 최면심리상담 전문가협회에서 올해들어 제25차  심리상담사  연수교육과 보수교육을 5월25일부터 8월 26일까지 3개월간 시행한다. 25차-1회 연수교육을 이수한 이들은 진선미, 강문정, 서희승, 유효숙, 유효진, 정광교 회원 등이다. 

한편, 우림산업 이종길 회장은 지역의 그늘진 곳에 불우한 이웃돕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희망나눔 글로벌 전문방송사에서 제16회 사회 봉사상을 수상했다.   

병풍서 대가 풍헌(豊軒) 고하윤 선비

세계최고기록 인증... 세계에서 찬사 이어지다    

[매거진 포스트21=편집부] 무엇이든 간단하고 편리한 것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 역시 점차 현대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전통예술이 “어렵고 난해하다”며 기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에는 1000년, 2000년 넘게 쌓아온 선조들의 얼과 뜻이 담겨 있으니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사회적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선조들의 거룩하고 깊이 있는 뜻을 이어가는 이가 강원도 정선에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바로 풍헌(豊軒) 고하윤 선비이다.

자아성찰 도와주는 문화전통예술 ‘서예’ 

오늘날 젊은이들의 가장 큰 화두 중에 하나가 자아성찰(自我省察)이다.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맞아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오직 돈 만을 쫓는 삶을 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더욱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적당한 생활을 유지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앞만 보며 살아왔던 이들이 대부분이라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풍헌 고하윤 선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전통예술 서예가 큰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한번씩은 무아지경을 느낀 바 있을 겁니다. 하얀 화선지에 먹선을 그리다 보면 골치 아픈 세상만사를 모두 잊고 오직 내 자신과 글에만 집중하게 될 때가 있죠.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면서 평안과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이렇게 안정된 마음상태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서예의 힘이죠.” 

병풍서 대가 풍헌(豊軒) 고하윤 선비

서예를 통해 항상 들뜨던 마음을 안정시키고 차분해졌다는 이들이 많다. 서예에 어느 정도 친근해진 이들이 있다면 풍헌 선비는 한문 서예를 적극 추천한다. 한글 서예와는 또 다른 멋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한문을 어려워 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까 한글 서예를 통해 서예를 배우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예의 진정한 멋과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문 서예를 해야 합니다. 한문에는 예전 우리 조상들이 남긴 풍류와 멋, 깨달음이 남아 있습니다. 배우기는 어렵지만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 만큼 매력적인 예술이 바로 한문 서예입니다.” 

한문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까다로울 수 있겠지만, 까다로운 만큼 그 안에는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심오한 지혜가 녹아 있다는 풍헌 고하윤 선비. 50년 넘게 서예에 매진하고 있는 그이지만 아직도 서예의 끝없는 깊이에 매번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풍헌 선비의 열정으로 우리나라 ‘병풍서 역사’ 한 눈에 보다 

풍헌 고하윤 선비의 서예 인생은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문을 배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철학에 따라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에 천자문을 뗏다는 그는 16살에 정선아리랑 8폭 병풍을 그리며 서예를 시작했다. 

양구군청 문화공보실장, 정선의 여량면, 화암면, 북평면장 등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붓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사회에서 힘겨운 일이 있을 때면 더욱 열정을 품고 붓을 들어 자신을 다스리고는 했었다. 

조양정 풍헌 고하윤 선비 작품

그리고 2002년, 공직을 은퇴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서예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삶을 살고 있다. 풍헌 선비는 본래 한국의 전통 서예를 공부했었다. 그러다 젊은 시절,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를 본받아 초서와 행서에 집중했고, 이후 서예의 오체인 전서와 예서, 해서도 공부해 오체 모두에 능통한 작가가 되었다. 

뛰어난 예술가 밑에는 그를 이끌어주는 참된 스승이 있는 법. 풍헌 선비는 규당 오상순 선생과 해정 박태준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진정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와 작품세계를 가질 수 있었다. 

서예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무엇이든 작업하는 풍헌 고하윤 선비이지만, 그가 특히 재능을 보이는 것은 병풍서다. 그의 첫 작품은 16세 때 쓴 병풍서였으며 이후 시간이 될 때마다 병풍서를 써 온 풍헌 선비의 실력은 한국 병풍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작품 하나하나의 감성 역시 뛰어나지만 양도 무시못할 수준이다. 2015년 대한민국 최다 병풍서 기록을 세운 그의 작업량은 다음과 같다. 

1994년부터 2014년 5월 30일까지, 무려 21년 동안 그가 작업한 평풍서는 전서 900폭, 예서 1,698폭, 해서 258폭, 행서 6411폭, 초서 2238폭, 한글 204폭으로 총 1만 1,709폭, 1,335질이다. 총 길이만 따져도 1만 6,275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한 개인이 작업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고 깊이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일까? 지난 2017년 3월. 풍헌 선비는 세계기록인증기관인 유럽연합(EU) OWR(Official World Record)로부터 최고기록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뜻깊은 상을 받게 된 이유는 풍헌 선비의 작품에는 그만의 해석과 이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함백당 풍헌 고하윤 선비 작품

“제가 쓴 작품들은 모두 옛 성인들의 시구(詩句)를 바탕으로 한 건데요. 옛 성인들의 시구를 따라 쓰기만 하면 단순한 그림 그리기와 서예가 별 차이가 없죠. 그래서 저는 여기에 저만의 해석과 이해를 첨부해 두었습니다. 한문을 모르는 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로도 풀어 설명해 두었습니다”

한국을 넘어 중국, 세계로 뻗어가는 고귀한 작품

풍헌 선비의 작품은 이미 국내에서 그 가치를 충분히 입증받았다. 그는 대한민국 정수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바 있고, 기록문화 대상, 전국공무원서예대전 대상, 강원서예대전 대상 등 150여 회 이상 수상한 경력이 있다.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서예가협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호남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지낸 바 있다. 

호남미술대전 고문, 정수 서화 미술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도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서예문인화 원로총연합회전 이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풍헌 선비의 명성은 국내뿐 아니라 서예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대단하다. 

중국에서 서예의 신이라 불리는 왕희지 필체를 독창적으로 해석했다는 평을 받는 풍헌 선비는 일찍이 한문성경보감 1천928폭을 왕희지 필체로 완성해 중국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거기다 불교사상을 설한 경전 ‘묘법연화경’을 왕희지 필체로 교본을 따라 2,292폭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규모만 11709폭, 16275m, 1335질에 이르러 장엄함을 주고 있으며 글자도 69,443자가 담겨 있다. 이 외에 대학이나 중용, 예기, 명심보감 등 동양의 이름난 경서들을 그만의 독창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표현해 내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서예인들의 관심과 존경을 자아냈다.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일념정진(一念精進)  

지금까지의 작품으로만 봐도 마땅히 ‘대가’라 부를 정도의 업적을 세운 풍헌 선비이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로 전시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올해에만 두 차례 전시를 했고, 1월에 했던 한국서예협회에서 주최한 6개 단체 초대작가 초청전에서 대한민국 명작 대상을 받아 상장을 수상했다. 

이번에 풍헌 선비가 수상한 상은, 6개 단체에 속한 거장들이 모두 작품을 냈고, 이들 단체의 총 대표인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직접 수여한 뜻깊은 상이다. 

“대한민국에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여러 선후배님들이 모인 곳에서 상을 주셨는데요. 상에 어울리는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정진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일정도 바쁘다. 6월에는 한국서가협회 중앙공모전, 국전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고, 7월에는 춘천과 강원도 서예대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9월에는 정선 아리랑제에서 병풍서를 전시하기로 해서 준비 중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이토록 매일같이 정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저는 서예를 시작하면서부터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한 바 있습니다. 서예는 이미 제 인생이나 다름이 없죠. 게다가 고맙게도 저를 인정해주고 따르는 후학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보기가 되어야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최소 1,000자 이상 쓰고 있다는 풍헌(豊軒) 고하윤 선비. 서예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작품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  

전주 지성철학관 임화 선생

[매거진 포스트21=오현진 기자]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 어느 날 갑자기 불운한 사건이 닥쳤을 때 철학관으로 향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계속되는 불행이 찾아온다면 떠오르는 생각. 

나는 어떤 운명을 타고났을까. 전주 지성철학관 임화 선생은 “사주팔자는 명리학을 토대로 한 학문이다. 51만 8,400가지의 경우의 수를 토대로 운과 명을 풀이한다”며 “조상 대대로 내려온 논리적인 학문으로 현재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운명적인 명리학의 길로 들어서다
 
전주 지성철학관 임화 선생은 한때 잘나가던 기업체 대표였다. 5개 사업장을 운영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어느 날부터 불운한 기운이 감돌았고 사업장은 하나씩 문을 닫아야만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되면서 임화 선생은 이 무렵부터 심오한 역학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어는 날 저의 사주팔자가 궁금해졌습니다. 많은 곳을 다니며 저의 운명을 감정받아 보고 상담도 해봤지만 저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죠 그때부터 새로운 명리학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어워드 수상 이미지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에 근거해 사람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분석하는 명리학을 기반으로 한 사주팔자는 중국 고대 당나라 이허중부터 체계를 갖춰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임화 선생은 3천여 권에 달하는 역학 전문서적을 공부하며 그토록 난해하다는 명리학의 정수를 깨우친다. 현재 그가 보유한 사주 관련 책만 250여 권. 

임화 선생은 역학의 진리를 정확히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 순간부터 철학원 설립에 돌입한다. 지금의 전주 지성철학관이 생긴 과정이다.   

그는 자연을 대입해 사주팔자를 풀이하며 의뢰인의 인생 전체를 그리는 학자로 유명하다. 

임화 선생에게 사주팔자 풀이를 의뢰하기 위해 전국에서 의뢰인이 몰려온다. 또한 각양각지에서 명리학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오는 동양철학 수강생들도 많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화 선생의 뛰어난 실력과 거짓 없는 풀이 때문이다. 사주풀이를 받으면 의심쩍을 때가 많다. 의뢰인의 상황과 전혀 동떨어진 풀이는 예측 정확성이 떨어지곤 한다. 위로와 위안을 주기 위해서인지 좋은 해석만 늘어놓는 학자도 있다. 

반면 임화 선생은 숲속의 나무를 보지 않고 다양한 변화를 바라보는 사주풀이로 신뢰를 얻고 있다. 

임화 선생은 “인생은 운명이 정해져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인연으로 운을 바꿀 수 있다”며 “좋은 파트너를 만나 사주를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솔직하고 명쾌한 사주로 그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원인을 찾아주며, 혹여 좋지 않은 사주라도 그대로 전해 대비책을 마련할 길을 열어준다. 

사주팔자로 인생을 다시 쓴다면 

전주 지성철학원에서 사주를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마음의 힐링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임화 선생의 날카로운 분석에 숨겨왔던 상처를 들킨 기분이 들 수 있다. 

좋은 사주가 아니고 나쁜 사주였다는 정직한 풀이는 의뢰인을 좌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임화 선생의 풀이를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임화 선생은 “좋은 궁합으로 서로 보완해주는 사주를 만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길은 오직 그 것 뿐이죠. 사람과의 유대관계 질에 따라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 인생사는 곧 ‘사람’이다”며 “의뢰인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사주를 정확히 풀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깨닫고 보완할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학자의 사명이다”고 강조했다. 

인생은 풍전등화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누구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타고난 성정은 바꿀 수 없어 불행함에 익숙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임화 선생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 올바른 사주풀이다”고 단언한다. 

사주풀이를 통해 귀한 인연을 만난다면 열심히 살며 노력하는 인생이 끝까지 빛날 것이다. 

(우)고봉석 원장

‘성명학’에 관한 연구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매거진 포스트21=박윤선 기자] 성명학이란 사주에 근본을 두고 동양사상의 바탕인 음양오행의 법칙과 수리, 음운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성명학 철학에 따르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이름에는 좋고 나쁨이 있으며 타고난 운명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즉, 좋은 이름으로 좋지 않은 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개명 후에 슬럼프를 극복하고 명성을 얻은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만큼 성명학은 그저 터무니없는 미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운의 흐름에도 법칙이 있다! 

천지창조의 7요일 중 5성(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을 의미하는 오행은 자연, 인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목성은 인간의 위와 모든 식물을 다스리며 화성은 인간의 간과 모든 만물의 열을 다스린다. 

토성은 인간의 비장과 지구의 흙을 다스리며 금성은 인간의 폐와 지구의 광물질을 다스린다. 마지막으로 수성은 인간의 심장과 비, 강, 바다와 같은 물을 다스린다. 이러한 오행에도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가는 상생과 둘 사이에 마음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항상 충돌하는 상극이 존재한다. 

나무에서 불, 불에서 흙, 흙에서 쇠, 쇠에서 물, 물에서 나무는 상생이며 그 반대는 상극이다. 만약 인간의 운의 흐름이 상생이 아닌 상극으로 간다면 일이나 건강 등이 잘 풀리지 않기 때문에 바로잡아주는 것이 좋다. 

운의 흐름을 읽어내는 ‘성명학’ 

성명학의 학문적 가치를 재정립하는데 공을 세운 ‘진본성명학’의 고봉석 원장은 성명학은 인간의 운의 흐름을 읽어내는 학문이라고 강조하면서 나 자신을 알리는데 이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자신에게 맞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사주와 이름의 기운이 서로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운을 타고났어도 그 운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봉석 원장은 좋은 이름을 짓기 전에 가장 먼저 사주를 제대로 분석한다. 

이후 운의 흐름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 이를 보완하며 조율해줄 수 있는 좋은 이름으로 작명한다. 사주와 이름의 기운이 서로 화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이처럼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에너지를 작명하는데 쏟아붓는 고봉석 원장의 노력을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현재까지도 ‘진본성명학’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해외에까지 입소문이 퍼진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도 고봉석 원장은 보다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해 자원오행과 삼원오행의 조화를 이루는 이름을 짓기 위해 성명학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진본성명학’의 고봉석 원장은 “그 사람의 사주와 이름이 조화를 이루어 좋은 운의 흐름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신중한 자세와 태도로 작명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성명학의 중요성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성명학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달은 ‘성명학’의 중요성 

20대 초반 때 건강이 크게 좋지 않았던 고봉석 원장은 우연한 계기로 개명을 했다. 이후 건강이 눈에 띄게 회복되고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성명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고봉석 원장은 그곳에서 10년이 넘게 무료로 사람들의 작명과 개명을 도와주었다.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을 직접 확인한 그는 성명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지금까지 업으로 삼고 있다. 이름을 대하는 고봉석 원장의 진지한 태도는 비단 작명뿐만이 아니다. 

좋은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고자 ‘섬기고 배우고 가르치고 봉사하라’라는 원칙을 통해 꾸준한 봉사활동을 이어나가며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 결과 고봉석 원장은 중국정부 우표발행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김현옥 전 내무부장관 표창, 김만재 전 재무부장관 표창, 경제단체 총회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공을 인정받아 현대한국인물사에 등재되고 세계 100인 영예증서를 수상하기도 했다. 

더불어 마닐라 이리스트 대학 철학박사를 취득하고 (사)한국역술인협회 중앙회 상임부이사장, (사)한국역리학회 중앙회 조직위원장, 청소년 연합회장, 기독청년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사람은 천운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름이 개인의 근본적인 운명을 180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름은 분명 후천적인 운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의 사주가 가진 약점을 좋은 이름으로 보완한다면 충분히 좋은 운의 흐름을 탈 수가 있다. 

그렇기에 고봉석 원장은 오늘도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성명학의 고귀한 가치를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모두가 좋은 이름을 가지고 좋은 운의 흐름 속에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사)교단용화불교 총본산 교령 용호사 주지 천강스님

어두운 세상을 불심으로 밝히는 참 종교인 만나다! 
  
[매거진 포스트21=유우주 기자] 우리나라 역사를 함께해 온 불교는 온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신앙심의 결정체다. 나라에서 탄압을 받던 시기에도, 전쟁으로 인해 망국의 위험에 처했을 때도 늘 흔들림 없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국민들을 감싸 안아줬다. 

전 세계적인 역병이 돌아 어지러운 시기이다. 이런 가운데 심적으로 힘든 사부대중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보여주는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사)교단용화불교 총본산 교령 용호사의 주지 천강스님이다. 

우리 민족의 희노애락 함께한 불교(佛敎) 

불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다. 372년 고구려의 소수림왕이 도입한 이래,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 민중들을 감싸 안아주었다. 삼국시대 때부터 고려시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국교(國敎)로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데 공헌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의 가치가 중요시 여겨져서 탄압을 받았던 순간도 잠시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위안이 되어줬던 종교다. 

불교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나라를 구하는 일에는 항상 가장 먼저 앞장서는 ‘호국’의 가치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자비’의 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기원을 담아 만든 ‘팔만대장경’의 제작,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승병들을 지휘하며 적장은 활로 쏴 죽인 김윤후 장군의 일화,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일본군을 막은 승병들의 의로운 투쟁 등 항상 국난에는 불교인들이 있었다. 

나라가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며 탄압했을 때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대중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들은, 왜 사람들이 오랜시간 동안 불교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준다. 

(사)교단용화불교 총본산의 천강스님은 호국·자비 정신의 초심을 잊지 않으면서 중생들의 어려움을 직접 도와주고,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앞장서서 나서는 행동하는 참 종교인이다. 

애국·애민사상을 직접 실천하며, 종교의 참 뜻 전파 

1984년에 만들어진 용화불교는 미륵불심에 의한 애국·애민·평화의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설파해왔다. 

용화불교를 이끌고 있는 천강스님은 소외계층 성금, 소외계층 장학금전달, 새터민 지원,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 주최 뿐만 아니라 매 년 마다 사랑의 점심나누기, 희망이웃돕기 성금모금 등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는 선행으로 부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파해오고 있다. 

특히, 나라에 위태로운 일이 발생했을 때는 각종 특별 대법회를 열어서, 나라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중생들과 함께 국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진다. 

용화불교에서 운영하는 ‘백화추모관’은 지역에서 봉안의 명당으로 소문나 있는데, 천강 스님의 뜻에 따라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분양비 없이 소액의 운영비로만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 종교적 제약이 전혀 없고, 특히 호국영령들을 무료로 안치함으로써 나라를 수호하고자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기상과 넋을 기린다. 

호국·평화·자애 정신을 중심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천강스님은 청주지역 범죄피해예방 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교도소 제소자들을 찾아 미륵불의 가르침을 전하는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렇게 중생들과 함께하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불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천강스님이다.

진정한 깨우침은 세상속으로 부터

흔히 말하는 ‘참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기부문화의 확산과 사회분위기 조성을 기여함으로써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는 모습을 오랜시간 보여준 용화불교는 자연스럽게 110여개의 경전, 300여개의 말사, 17개 지청으로 불교의 참뜻을 꾸준히 전파하게 됐다. 

최근에는 세계불교미래법왕청 출범과 함께 다양한 불교문화 전파에 교육협약을 체결하면서, 불교 발전과 사회기여를 인정받아 ‘제18회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물 대상’ 종교부분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천강스님은 “혼자 도를 닦아서 깨우침을 얻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는 나 스스로의 참모습을 찾고, 생활 속에서 중생들과 소통하며 정신적인 지주역학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불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깊은 산 속에서 자기 성찰을 하며 깨우침을 얻는 수동적인 불교보다 적극적으로 생활속에 들어가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 세상에 고난과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용화세계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소망의 뜻을 밝혔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베풀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천강 스님이 평생 동안 중생들을 위해 걸어온 길은 부처님의 고행만큼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이다. 

남은 여생 또한 중생들을 위해 실천하며 살아갈 천강스님의 자비로운 미소를 보며 부처님의 따뜻함을 느껴본다.   
 

보리수한지마을 김현숙 작가(대표)

전통과 예술문화에 시간이 더해지면 명품이 된다
 
[매거진 포스트21=유우주 기자] 공산품이라는 이름아래, 기계가 만들어서 예술혼이 담겨 있지 않은 생산품들이 우리의 생활 속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작품의 세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오래 기억에 남고 간직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가치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가치를 고수하며 전통공예를 꽃 피우고 있는 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보리수 한지마을의 김현숙 대표(작가)다.

세월이 흐를수록 빛이 나는 한지

한지는 닥나무의 껍질을 원료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다. 닥나무의 인피 섬유를 주 원료로 만드는 한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이의 원료인 목재 펄프에 비해 섬유의 조직이 튼튼하고 질기다. 

그리고 산성도가 일반 종이에 비해 월등히 중성에 가깝기 때문에, 세월의 풍파에도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세월이 지날수록 결이 고와지는 종이다. 

뿐만 아니라 한지를 만들 때 쓰는 식물성 원료인 닥풀로 종이를 붙이며 만들기 때문에 섬유질 사이 사이마다 잘 붙어서, 종이의 결을 좋게 만들어 준다. 이런 장점을 지닌 한지로 만든 공예품들은 질감이 질겨서 내구성이 좋고, 천연 염색으로 도색한 외형은 부드럽고 은은한 느낌을 선사한다.

보리수 한지마을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낸 한지공예

자극적이지 않은 천연 염색으로 청·적·백·흑·황 오방색을 내고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점과 선으로 은은하게 꾸며낸 것이 우리 서민들의 정서를 닮아있다. 

가볍고 실용적인 특징 덕분에 버선장, 화초장, 갓집, 반짇고리 등의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들이 예로부터 공예품으로 만들어졌다. 보리수 한지마을 김현숙 대표는 책꽂이, 명함첩, 바구니, 쟁반, 악세사리같은 작은 소품부터 장롱과 같이 큰 가구까지 수천가지의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한지 공예품을 만들면서 정신 집중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신 수양이 된다고 한다. “작품 하나하나에 나의 혼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 없다.”는 김현숙 대표의 말에 저절로 수긍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운명과도 같았던 한지와의 조우

김현숙 대표는 한 가정의 내실을 책임지는 평범한 주부였다. 우연히 아이들과 함께 구경한 한지공예의 아름다움에 빠져 취미로 시작했던 한지공예였다. 

어렸을 때부터 수채화 그리기를 즐겼던 김현숙 대표의 예술가적 풍모는 한지공예를 만나자마자 폭발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적 혼을 담아 작품에 담아내고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하며 우수한 한지공예품들을 직접 찾아가 관람하는 것을 생활화 했다. 

보리수 한지마을 김현숙 작가(대표)

문양과 디자인에 관한 끊임 없는 연구를 하는 한편, 머리로 생각한 문양이 작품에 온전히 나올 때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샌 적이 많을 정도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통적 가치와 모던한 현대적인 자연스러움을 더한 민족 고유의 감성을 잘 녹여낸 예술가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만학도로 송원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한지공예지도사, 한지공예 강사, 전통한지공예 사범, 한지공예 1급 지도교사 취득 등 끊임없는 배움을 이어왔다. 

아동미술 교육자 2급, 실기교사(디자인) 교원, 보육교사 2급, 문화예술교육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 출강하고 지역에서 열리는 체험 학습프로그램이나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김현숙 대표의 예술가적 능력과 전통문화를 지키는 공로가 인정되어 대한민국 공예예술대전 대상, 한국 공예문화공모대전 특선, 대한민국 문화관광상품대전 특별상, 국제현대미술우수작가 특별전 우수상 등 셀 수 없이 많은 수상 경력을 추가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달려온 결과 2월에는 오색한지공예 ‘명인’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전승되어야 할 우리의 전통공예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전시회에 참여하는 한편, 중국에서 해외전시도 하며 전 세계에 한지공예의 예술성을 전파하고 있는 김현숙 대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김현숙 대표는 전통공예의 가치를 지키고, 계승하기 위해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강의, 전시회를 열어 대중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보리수 한지마을

“우리 것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그 중에서도 전통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 어린 학생들에게 공예를 지도할 수 있는 교육기관의 협조가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김현숙 대표의 말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한지는 만들 때, 한 겨울에 찬물로 만들어서 세균과 박테리아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한 겨울에 100가지의 과정을 겪는 고행을 거쳐 만들어내서 ‘백지(百紙)’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듯이, 깨끗하고 오래가는 명품 종이가 탄생하는 과정은 험난하고 오래걸리는 길이다. 

이처럼 굳이 험지를 묵묵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장인’이라 부른다. 김현숙 대표의 한지공예의 길 또한, 뜬 눈으로 밤을 새며 작품 하나하나를 자식같은 마음으로 품어낸 외길이다. 

명품 재료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명품 손길이 합쳐진 한지 공예품을 단순히 효율성과 가성비로 평가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뒤로 한 채, 김현숙 대표는 오늘도 열심히 대중들과 소통하고 작품 세계에 뛰어든다. 그녀의 장인 정신 가득한 작품들을 오랜시간 감상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일충 송병주 선생

마음과 인격, 품격을 나타내는 손글씨

주목받는 전국 유일의 단 한명뿐인 세필분야 대한명인

 

[매거진 포스트21=김민진 기자] 예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서 어른들은 바른 글씨쓰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손글씨보다 키보드로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많아진 요즘, 글씨쓰기는 외면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안타까이 여기며 우리나라에 바른 손글씨가 많이 퍼지도록 노력하는 이가 있다. 바로 전국 유일의 세필분야 전문가인 대한명인 일충 송병주 선생이다.

 

손글씨, 감성과 정신수양의 일환으로 각광

 

동양 문화권에서 글씨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예술활동의 일환이다. 우리 조상들은 글씨에 글쓴이의 평소 습관과 생각, 마음씨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서 언제나 바르게 글씨를 쓰도록 교육해 왔고, 이 전통은 지금도 남아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고 간단한 메모도 스마트폰으로 하는 시대가 오면서 글씨의 중요성이 퇴색되는 부분이 있다. 이에 일충 송병주 선생은 손글씨의 위대함을 알리는 다양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손글씨에는 손글씨만의 인간적인 감성과 품격이 묻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서를 전자로 처리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손글씨와 비슷한 폰트를 찾아 헤매죠. 캘리그라피를 비롯해서 아련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손글씨는 이제 예술작품의 영역에까지 다다랐습니다.”

 

송병주 선생은 글쓰기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면서 정신수양의 일환이기까지 하다고 이야기한다. 각질고 삐뚤삐뚤한 글씨를 교정하면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모난 부분도 부드럽게 다듬어 간다는 것.

일충 송병주 선생 작품

한 글자, 한 글자 온 정성을 다해서 쓰다 보면 집중력과 사고력은 물론 글쓰기 능력까지 키워준다는 손글씨.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을까?

 

악필교정, 전문가의 교정 없이는 힘들다

 

송병주 선생은 필기구 잡는 방법과 자세부터 교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글씨 연습을 하겠다고 혼자 노트를 사서 연습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이런 행동은 오히려 악필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글씨체는 습관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혼자 연습하지 마시고 꼭 전문가의 지도 아래 글씨 연습을 해야 합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는데 익숙한 손을, 필기구를 잡는데 어울리도록 잡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죠.”

 

현재, 공직자로 재직하고 있는 송병주 선생의 손글씨 사랑은 35년이 넘었다.

 

군 입대 전부터전문적으로 글씨를 배워 육군본부에서 시행하는 챠트 행정병으로 입대하여 1군사령부에서 전역 후 국가 공인기관인 대한글씨검정교육회 세필 1, 2급과 차트 1, 2급 그리고 펜글씨 1, 2급 등 글씨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한 송병주 선생은 이후 국토교통부 산하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필경사 특채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손글씨에 모든 것을 바친 삶을 살고 있다.

 

퇴근 후에도 그의 손글씨 사랑은 이어진다.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민대학 대전광역시 배달강좌 등 악필교정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보다 많은 이들의 글씨를 수정해 주던 선생은 악필교정 출장지도라는 홈페이지를 열어 출장 교육까지 진행한 바 있다.

일충 송병주 선생 작품 

그 공로와 실력을 인정받은 것일까? 2014. 일충 송병주 선생은 대한명인 제415호로 선정되었다. 대한명인은 ()대한민국 명인회에서 선정하는 것으로 그 기준이 무척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곳에서 명인으로 인정받은 송병주 선생은 2017, 그 동안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저서 <대한명인이 알려주는 악필교정 노트>를 출간했다. 이 책은 악필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인기를 끌며 3쇄까지 발간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예술작품의 영역에까지 오른 손글씨

 

한 분야에서 명인으로 인정받은 전문가인 만큼 무수히 많은 단체에서 송병주 선생을 영입하려고 노력중이다.

 

현재 맡고 있는 직함만 해도 ()대한글씨검정교육회 대전·세종 지부장, 대한민국 명장·대전광역시 장인회 운영위원(대한민국 명장회 대전지부), 대한민국 공무원미술협의회 충청지회장, 대한민국 안견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한국매죽헌서화협회, 한국서예협회(충남), 한국서도협회(대전·충남) 초대작가 등이다.

 

여기에 많은 상장은 덤이다. 국무총리 표창, 국토교통부, 국토해양부 장관 표창, 월드마스터위원회(세계명인회) 감사장, 대한명인회 감사장, 2015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2016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 2017 한국의 아름다운 얼굴, 2018년도에는 대한민국 신문기자협회에서 주관한 명인·명장 부문 사회공헌 수상자로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을 수상했다.

 

8회 대한민국 명장 장인전에서 대한민국 명인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기술발전과 기능인 지위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전광역시장 표창까지 수훈했다.

 

무수히 많은 상장과 직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손글씨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가고 있는 송병주 선생.

일충 송병주 선생 작품

그의 글씨는 반듯하고 간결하며 곧은 모습을 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을 자아내는 송병주 선생의 글씨는 예술작품과 다름이 없다. 공직생활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는 그의 마지막 꿈은 후학양성이다.

 

글씨는 수학방정식과 같아서 기본만 알면 누구나 잘 쓸 수 있습니다. 아직도 글씨 쓰는 걸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는데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 퇴직하고 나면 공방과 학원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할 계획입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단 한명뿐인 세필 전문가 송병주 선생. 아날로그 감성이 깃든 그의 손글씨 명맥은 21세기 IT과학 시대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 Recent posts